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칡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칡소

입력
2007.09.18 00:06
0 0

직업이 기자이다 보니 아는 게 많을 거라는 얘기를 왕왕 듣는다. 굳이 아는 양으로 말하면 보통사람들보다 적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안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자가 정작 흥분하는 경우는 정말 모르던 팩트―'사실'이라는 표현을 기자들은 이렇게 영어(fact)로 써서 무슨 굉장한 전문용어나 되는 양 한다―를 접했을 때다. 나는 그런 경우를 '기자는 팩트로 충격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최근에 본인의 무식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그런 경우가 있었다.

■9월 13일자 한국일보 15면 '칡소가 납신다'는 기사였는데 '칡소'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거니와 박목월 시인이 읊은 〈얼룩 송아지〉가 홀스타인 새끼가 아니라 애기 칡소였다는 것이다.

기자의 특기가 의심인지라 조사를 해 보니 목월의 후일담이 눈에 띈다. 이 시가 "중학교 다닐 때 쓴 시"라는 것이다. 목월이 1916년생이니까 1930년대 초 이전에 쓴 시로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당시에는 흰 바탕에 검은 얼룩무늬가 있는 홀스타인은 없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1902년 쇼트라는 프랑스 사람이 젖소를 처음 들여왔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홀스타인이 널리 보급된 것은 1970년대라고 한다. 그러니 목월이 홀스타인 새끼를 노래했을 리는 만무하다. 같은 이유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하는 정지용의 〈향수〉(1923년 작)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 역시 칡소다.

목월이 왜 서양소를 노래했을까, 지용이 왜 굳이 서양소를 들먹였나 아물가물하던 차에 기자의 몰상식이 이 기사 한방에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익히 아시던 독자들 앞에서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칡소는 누런 소 온 몸에 칡덩굴 같은 검은 줄무늬가 난 소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로 시작되는 백석의 코믹한 시 〈연자간〉(1936년 작)에 나오는 '얼럭소'(얼룩소) 역시 칡소를 일컫는 말이다. 유전공학으로 복원한 전통 칡소가 요즘 추석 선물 세트로 인기라고 한다. 유명 백화점에서 4.8㎏짜리가 70만원에 팔린다니 보통 고가가 아니다.

두 뿔이 모두 안으로 꼬부라졌거나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은 소는 '노구거리 소', 푸른 털이 얼룩진 소는 '청치', 제주에서 제사 때 제물로 바치던 소는 '흑우', 아직 덜 자란 송아지는 '엇송아지', 여덟살 된 소는 '여듭소'라는 말도 기자에게는 충격적인 팩트였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