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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 융합 '통섭의 대명사' 최재천 교수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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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 융합 '통섭의 대명사' 최재천 교수의 좌절

입력
2007.09.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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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융합이나 통섭(統攝)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학문 간의 벽이 그 만큼 높기 때문이겠죠."

생물학자 이면서도 인문학을 접목시킨 쉬운 자연과학 강의로 잘 알려진 최재천(53)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얼마 전 좌절을 겪었다. 생명과학전공 교과과정개편 회의에서 새로운 강의를 개설하자고 제안했으나, 학교측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학부 1,2학년생들을 상대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마음껏 넘나드는 생명 과학 강의를 해보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최 교수는 지난해 여름 10년 넘게 몸 담았던 서울대를 떠나 이화여대로 옮겼다. 학계와 언론이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그를 데려오기 위해 이화여대 측이 들인 공은 대단했다. 6개월 동안 지인들은 물론 이화여대 출신의 최 교수 부인까지 설득에 나섰다.

학교 측은 ▦석좌교수 추대 ▦1년에 한 학기만 강의 ▦대학원 에코과학부 신설 ▦영장류 연구소 부지 제공 등 파격적 대우를 약속했다. 무엇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한 데 어울리게 하는 '통섭'을 자유롭게 펼치도록 지원하겠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학교측은 지난해 9월 통섭원이라는 별도 연구 기관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새 강의 개설에 제동이 걸린 최 교수가 느끼는 아쉬움은 더욱 크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학문 융합을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교육부도 독려하고 있지만 토대는 허약하기 짝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기존 체계나 내용 변경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학자들이 많은 것도 학문 융합이 안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대학의 학문융합은 40점 수준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학문 융합을 기피하고 학생들은 취업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빚어진 당연한 결과라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실에 안주하는 대학을 정면 비판했다. "대학 본부도 기존 학과를 과감히 개편해 교수들이 새로운 주제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모여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합니다. 학문 융합을 위한 별도 기관을 만들고 전담 교수를 채용하고 예산 지원을 늘리는 게 시급합니다."

그는 문과와 이과를 가르는 교육 체계도 학문융합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지구상에서 고교생을 문과 이과로 나눠서 가르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고득점한 학생들이 입학하지만 학문융합이 안돼'수학(修學) 장애인'만 양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 통섭(統攝)

큰 줄기(통)를 잡다(섭),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한데 어울리게 한다는 뜻이다. 최 교수가 자신의 스승인 미 하버드대 석좌교수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책 '컨실리언스'를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박상준기자 buttno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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