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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거꾸로 미술보기] 오타쿠, 꿈을 모으는 수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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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거꾸로 미술보기] 오타쿠, 꿈을 모으는 수집광

입력
2007.09.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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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이자 장난감 수집가인 현태준(1966년생)의 첫 개인전이 서울 홍대 앞 갤러리 상상마당에서 개막했다. 제목은 <현태준의 국산품展> . 오타쿠(オタク)인 그가 ‘신식공작실’을 설립한 것이 92년이니, 벌써 데뷔 15주년이다.

당시 오타쿠의 취미를 가진 한국인은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인지, 그를 오타쿠로 소개하거나 해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도리어 주요 언론은 ‘뽈랄라 아저씨’인 그를 사라지는 장난감 문화를 지키는 수호자쯤으로 묘사하곤 했다. (‘뽈랄라’=‘포르노 랄랄라’)

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일본의 수집광들이 한국의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를 ‘싹쓸이’해가며 희귀 장난감 확보에 열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 그에 맞선 국내 유일의 ‘큰손 어른이’가 그였으니, 그런 평가가 근거 없진 않다. 허나, 인간 현태준을 묘사하는 가장 정확한 개념어는 역시 ‘한국형 오타쿠’다.

일본의 오타쿠라고 하면, 일단 만화와 피겨 수집에 열을 올리는 사회부적응 성향의 무표정한 젊은 남성이 연상된다. 신경심리학자 제이슨 박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하위문화에 집착하며, 그 정보를 수집ㆍ체계화하는 것이 오타쿠의 특징이다. 하지만 동인 활동을 통해 패러디를 시도할 때조차 원전의 기본 구조를 변형하지는 못 한다”라고 설명한다. 즉, ‘외부에서 주어진 완결된 서사의 세계에 광적으로 몰입함으로써 현실을 도피하는 일’이 핵심이라는 것.

오늘날 도쿄 아키하바라까지 점령해버린 오타쿠 문화는 진화를 거듭해 야릇한 추상 개념까지 낳았다. ‘모에(萌え)’가 그것이다. ‘싹트다/타오르다’는 뜻의 이 단어를 쉽게 설명하면, ‘애호하는 미소녀 캐릭터를 볼 때, 가슴에 솟는 흐뭇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모에는 미소녀 취향에 국한되지 않는 모양이다.

만화연구가 김낙호는 모에를 “원형적인 요소들의 파편을 긁어모아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조합해 맞춰내는 방법”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방법 가운데 가장 재밌는 것은 의인화(‘모에화’)의 방법이다. 기차/대기업/편의점 등을 미소녀로 전환해, 캐릭터 군단을 만드는 것이다. 허나 이제 의인화도 남성 오타쿠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칭 ‘막장 동인녀’들이 편의점/대기업 등을 미소년/미청년으로 의인화하는 데 나섰기 때문이다.

‘원전에의 충성과 편집증적 수집을 통해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모에라는 추상적 (자기만족의) 쾌락을 획득하는 일’이 광범위한 문화 현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의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역설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우울해진다.

<건담> 시리즈와 함께 수많은 오타쿠의 가슴을 울려온 <에반게리온> . 그 신극장판의 주제가인 <아름다운 세상> 은 우타다 히카루가 만들고 불렀는데, 그 노랫말이 꽤 듣기 불편하다. “자나 깨나 소년만화 생각뿐 / 자신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그러고 보면, 한국의 1세대 오타쿠인 현태준은 ‘자기 긍정’과 ‘사회화’ 모두에 성공한, 대단히 운 좋은 예외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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