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철 지음ㆍ이상엽 사진 / 이른아침 발행ㆍ272쪽ㆍ1만2,000원
‘이 세상 저 세상/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
50여년간의 장좌불와로 치열한 수행정신을 보여준 청화 스님의 임종게는 읽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평생 하루 한끼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스님은 생사에 초연했다.
선사들은 죽음을 앞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임종게 또는 열반송이라고 불리는 짧은 게송들을 남겼다. 깨달음의 세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지만 그들이 남긴 게송은 평생 수행을 통해 이룬 경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 는 고려 중기부터 최근까지 65명의 큰스님들이 남긴 열반송을 그들의 일화와 함께 모았다. 내>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가야산 호랑이’로 불리며 현대 한국불교에 큰 자취를 남긴 성철 스님의 열반송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서릿발 같은 기상을 보여준다.
스님들은 죽음 앞에서 담담했다. 비룡 스님은 ‘흰 구름이 오듯 더불어 와서/밝은 달이 가듯 따라서 가네/한 주인이 가고 옴이/필경 도인의 삶이라’라고 했다. 구산 스님은 ‘만산의 서리 맞은 낙엽이 봄꽃보다 붉으니/삼라만상 큰 기틀이 모두 뚜렷하구나/사는 것도 공하고 죽음 또한 공하니/부처의 해인삼매 중에 미소 지으며 가노라’라고 했다. 희언 스님은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지옥의 찌꺼기만 만들고 가네/내 뼈와 살은 저 숲 속에 버려두어/산짐승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는 글을 남겼다.
글 대신 말로만 뜻을 전한 스님들도 있었다. 세계 곳곳에 수많은 서양인 제자들을 길러낸 숭산 스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말은 자애롭던 스님의 얼굴처럼 여유로웠다.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이 청산유수로다.”
서암 스님의 마지막은 임종게조차 군더더기로 여긴 그의 담백한 삶을 보여준다. 스님은 남기실 말씀이 없느냐는 제자들의 거듭된 물음에 “나는 그런 거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라고 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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