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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이승우 장편 '그곳이 어디든' "어디서건 어떻게든…인간은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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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이승우 장편 '그곳이 어디든' "어디서건 어떻게든…인간은 살아내야 한다"

입력
2007.09.1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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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문학 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 이승우(48)씨가 장편 <그곳이 어디든> (현대문학 발행)을 펴냈다. <식물들의 사생활> (2000) 이후 7년 만의 장편으로, 그 사이에 작가는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광고> 등 3권의 단편집을 펴내기도 했다.

장편이 뜸했던 것은 이씨가 현실적 고민 끝에 10여 년의 전업작가 생활을 접고 2001년부터 대학(조선대 문예창작과) 강단에 선 일과 관련된다. 그는 “서울과 광주를 오가는 빡빡한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장편이 잘 안써졌다”며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스스로를 독려하고자 처음으로 월간지에 연재했다”고 말했다. 이번 장편은 작년 3월부터 1년 간 월간 <현대문학> 에 실었던 작품을 올 여름 재차 손봐서 내놓은 것이다.

<식물들의 사생활> 에서 연애담, 추리소설 기법 등 대중적 코드를 가미하며 변화를 꾀했던 이씨는 이번 장편에서 다시금 삶의 진정한 의미를 천착하며 예의 묵직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의식의 흐름이 서사와 동행하며 빚어내는 작가 특유의 지성미도 빛을 발한다. 이씨는 “오랜만에 쓰는 장편인데다 심적 부담도 있어서인지 쓰는 내내 어깨가 무거웠다”고 말했다.

작품 배경은 한반도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가상의 소읍 ‘서리’. 험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중죄인의 귀양지였던 이 곳은 현재 지역을 장악한 폭력 조직이 사기, 갈취, 폭행을 일삼는 공간이다.

사실상 사직 권고로 서리에 파견된 주인공 ‘유’는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폭력에 직면한다. 순식간에 거처 없는 무일푼의 존재로 전락한 그는 활화산 동굴에 ‘영혼의 안식처’인 돌무덤을 만들며 세상의 종언을 외치는 ‘미친 노아’와, 그런 아버지를 경원해 탈출을 시도하면서도 번번이 폭력의 땅으로 귀환하는 성매매 여성과 가까워진다.

사악한 현실에 등 돌리고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노인과, 고난을 감내하면서 현실에 발 딛고 서려는 딸. 철학적 메타포가 강하게 느껴지는 이 대립적 구도에서 독자는 언뜻 작가가 노인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느끼기 쉽다. 주인공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뒤흔든, 죽어가는 아내의 전 남편에게 애써 지어온 돌무덤을 내주는 장면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작가는 “판단은 독자의 몫”이란 단서를 달면서도 “작품 곳곳에 숨겨둔 복선과 암시에 주목한다면 다른 의미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곳일지라도 여기서 사는 것 혹은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 아닐까”라며 “주인공의 행동도 윤리적 차원보다는, 타인과 서로 삶을 지고 지우며 살도록 이끌려지는 인간의 운명이란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첫 불어 번역작 <생의 이면> 이 페미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작년 번역된 <식물들의 사생활> 판매량이 5,000부를 돌파하는 등 이씨는 프랑스에서 호평을 받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내 소설이 개인적 심리를 파헤치는 작품을 선호하는 프랑스 독자의 취향과 부합하는 모양”이라고 말한 그는 “<식물들의 사생활> 을 출간한 줄마 출판사의 요청으로 차기 번역작을 신중히 고르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1년 정도는 이번 장편을 쓰느라 소홀했던 단편 창작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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