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을 배울 때 “아빠” 하고 부르는 것이 신기했고, 초등학교 때 책 읽는 소리가 대견했다. 어느 날 동시(童詩)를 외우는 아이에게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도 외우게 하면서 필자 역시 몇 수를 외운 적이 있다. 외우다 보니 한 수 짓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다.
중국철학이 전공인 필자에게 어느 학생이 중국 고전 중 가장 인상 깊고 중요한 책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논어와 시경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필자의 인생을 뒤바꿔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경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그동안 머리털이 곤두서도록 무섭게 따지는 문장만 읽고 쓰던 필자에게 시문은 너무 편안하게 느껴졌다.
시경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시문도 직접 지어 보게 되었고, 시에 대해서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시를 짓다보면 좋은 시어를 찾게 되는데, 있는 것은 발굴하고, 없는 것은 만들어 간다. 개념 없는 직관은 어떤 느낌이 있다 해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경에는 무사(無邪)ㆍ무위(無爲) 등의 시어처럼 진리를 통찰하거나 표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역설적 부정어(예:서양의 paradox나 인도의 neti neti법(‘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다’는 뜻))가 많이 있다. 그 중 공자는 ‘무사’로 ‘인’을, 노자는 ‘무위’로 ‘자연의 도’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시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개념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무연(無然)이란 말이다. 무연은 시경의 시문에서 본래 “그런 것이 없다”거나 “그렇게 하지 마라”는 뜻이다. 그것을 역설적 부정어로 사용함으로써 틀 없는 틀로 만물 일체를 한 번에 통찰할 수 있는 세계관을 필자는 무연관이라 명명했다.
시는 정보 전달보다는 아름다운 세계를 상상하고 창조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기능이다. 만약 역설적 부정어로 무한대반전을 한다면 어떤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게 될까?
남상호ㆍ강원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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