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화장장 유치를 둘러싼 경기 하남시장 소환투표가 주민서명 절차에 중대한 흠이 있다는 법원 판결로 중단돼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법원은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주민 서명부에 청구사유를 명시하지 않아 서명 자체가 무효라고 판시했다.
올해 도입된 주민소환제의 첫 사례로 떠들썩하게 관심을 모은 것에 비해 어처구니없는 결말이라는 느낌이 앞선다. 그러나 그만큼 주민소환제의 본질에 관한 값진 교훈을 남겼다고 본다.
법원 판결은 언뜻 법이 정한 투표절차와 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인 것으로 비친다. 김황식 시장의 광역화장장 추진에 하남 시민들이 격렬한 찬반 논란 끝에 주민소환을 꾀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터에, 서명부 요건 미비를 문제 삼은 것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인정하지 않거나 부당하게 부인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문제 삼지 않고 투표절차를 진행한 마당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은 난데 없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은 단순히 형식요건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주민소환제에서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일깨웠다고 본다.
민주선거를 통해 다수의 지지로 자치단체장을 선출한 주민들이 스스로 지지를 철회하는 데는 그만큼 책임 있는 의사 결정과 엄격한 확인이 필수적이라는 원칙을 새삼 천명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초한 주민소환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운용하는 자세다.
주민소환제 시행과 동시에 곳곳에서 소환투표가 추진되는 상황은 자치단체장의 무리한 일방 행정과 의회의 부실한 견제 기능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선거에서의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스스로 선출한 주민 대표를 수적 요건만 갖추면 언제든 소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인식은 대의 민주주의와 민주적 자치의 근간을 위협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후 수단인 주민소환제의 남용을 막기 위해 소환투표 청구사유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던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물론 제도 개선에 앞서 의식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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