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윤영 지음 / 역사비평사 발행ㆍ276쪽ㆍ1만2,000원
임진왜란 이후 크게 늘어난 씨족마을들의 공간배치를 살펴보자. 마을입구에 도당나무와 정자가 놓여있고 노비들의 집, 타성바지의 집, 본성바지의 집, 종가 순으로 위계가 높아진다. 현대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거주공간인 아파트의 경우는 어떨까? 단지출입구에 나무와 정자가 세워져 있고 향(向)과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40~50평 규모의 중대형 아파트가 선다.
그 다음 좋은 위치에 20, 30평대의 아파트가, 가장 구석진 곳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 혈통에 따라 배분됐던 권력관계가 자본에 의한 그것으로 대체됐을 뿐 공간배치의 기본구조는 큰 변화가 없다.
고려대 건축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공간의 경제, 사회, 문화적의미를 밝혀낸다.
가령 1970년대 한국의 중간계층의 아파트마다 생겨났던 가정부방과 19세기 산업혁명기 영국의 노동자주택에 배치했던 소형응접실인 ‘스몰팔러’ 의 공통점을 밝혀내기도 하고, 직주(職住) 혼합을 상징하는 고대로마의 로무스 주택과 사랑채(공적공간)와 안채(사적공간)가 조화롭게 배치된 조선시대의 가옥구조를 비교하기도 한다.
책은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남긴 문헌자료를 토대로 변화하는 조선후기 주거문화의 변화흐름과 현재와의 상관성을 읽어내는데 주력한다. ‘민족문화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식의 특수성의 잣대로 전통건축물들을 소개ㆍ상찬하는 기존의 답사기행문식의 접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건축에는 굽은나무가 왜 많이 사용됐는지 왜 당시에는 일(一)자형 홑집이 전(田)자형 겹집으로 바뀌었는지 같은, “왜 당시 사람들은 그때 그런 집을 짓고 살았을까” 라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궁금증을 실증적으로 풀어준다.
보편성의 잣대로 건축문화의 코드를 읽으며 교양도 쌓을 수 있고 ‘봉창 두드리다’ ‘동네북을 두드리다’ 같은 주거문화의 흔적이 깊게 밴 말들의 어원을 찾아가는 소소한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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