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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선판의 '껍데기'들

입력
2007.09.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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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다. 십 수년 전 한 기자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당시 대선 판도는 '2강(强)'과 '1약(弱)'의 3파전이었다. 그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1약 후보를 담당했는데, 2강 쪽을 출입하는 동료들의 위로를 받았다. "안 되는 후보를 따라다녀야 하니 재미가 없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오히려 다른 동료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자신이 취재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기에 다른 동료들이 헛물을 켜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결과는 2강 중 한 명이 당선됐다. 그가 "1약 후보도 진짜로 자신이 당선되는 줄 믿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며 "객관적 자료도 훨씬 유리했다는데"라고 말할 만큼 후보나 캠프 모두가 당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2강 후보 중 패한 후보를 취재했던 또 다른 기자는 "모종의 불법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리 없다"며 한동안 투ㆍ개표의 부정의혹을 파헤친다고 설쳤다. 기자들이 그럴진대 그 캠프의 구성원들은 어떠했을 것이며, 후보 또한 얼마나 큰 확신과 믿음으로 선거에 임했을까.

● 항상 지지자만 접하는 정치인들

지지난 번 대선에서도 그랬고, 지난 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낙선 후보 측에선 말은 승복한다고 하지만 진짜로 의구심을 가졌다. 각종 증거(?)를 예시하며 투ㆍ개표의 부정의혹을 제기한 것은 당연할 수 있었다. 심지어 객관적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들조차 '의외' '이변'으로 표현하지 않고서야 스스로 믿을 수 없었을 법하다.

대선 후보를 비롯해 정치인의 가장 큰 약점은 지지자만 접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을 미워하고 꼴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혹 유세장에서나 당사 주변에서 야유하는 목소리나 힐난하는 피켓을 접하기도 하지만 극히 소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흔히 시장바닥을 들른다거나, 고아원이나 노인정을 방문했을 때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사람 외에는 만날 일이 없다.

싫은 후보에게 다가와 "난 당신보다 누구누구가 더 좋소"라고 말하는 할일 없는 백성이 몇이나 있겠는가. 자칫 그러다간 정치적 테러범이나 돈 먹은 공작원으로 몰려 곤욕을 치를 게 뻔하다.

정치인들은 악수할 때의 느낌을 통해 지지자인지 아닌지 구별해 나름대로 여론의 동향을 가늠한다지만, 이미 악수의 대상이 선별된 상황에서 그가 '가늠한 동향'은 아전인수가 될 뿐이다. 정치가 본질적으로 '끼리끼리'의 승부일 수밖에 없기에 패배나 타협은 있어도 '우정 있는 설복'은 있을 수 없다.

정치인의 이러한 경향은 단순한 착시가 아니라 한정된 표본 선정으로 인한 불가피한 인식이며, 그래서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당선되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 출마를 선언하고 캠프를 차린다거나, 캠프의 성원이 자신들의 보스가 안 될 줄 알면서 따라다닌다면 좀 심한 말로 후보자나 캠프 모두 일종의 범죄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을 기만하고 신문지면을 탈취하고, 일부나마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집단까지 현혹한 것이니 그렇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내년 총선이나 당내 지분 등을 염두에 두고 남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겠다는 '범의(犯意)'까지 갖춘 경우도 더러 있다.

● 당선되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

분명히 당선될 자신이 있다거나, 내가(혹 우리가) 정권을 잡아야 할 이유가 명백하다거나, 국민이 우리의 진정을 알게 되면 더 많이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꾼들은 모두 물러서야 한다.

나중에 한 건 하기 위해 대권도전 간판이 필요한 자, 다른 후보의 수하로 들어갈 게 뻔한데 당장 언론의 조명을 받는 걸 즐기는 자, 12월 19일까지를 총선 선거운동으로 이용하는 자, 직업이 후보였던 3공 시절 모씨를 연상케 하는 자, 모든 껍데기 꾼들은 물러서라.

결과적으로 몇 %의 득표 밖에 못하게 되더라도, 믿음과 소신, 당위성을 가진 후보들은 충분히 존중될 것이지만, 의도적인 '꾼'들은 신문지면과 국민들의 머리만 어지럽히게 된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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