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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좀 조용히 좀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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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좀 조용히 좀 삽시다

입력
2007.09.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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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이맘때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88올림픽을 계기로, 서울 모습 가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100만 개의 공해간판을 없애는 일이었다.

지금 서울 거리가 그 때보다 확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한 업소가 10개 가까이 간판을 내건 건물이나 창문을 가린 대형 간판이 쉽게 눈에 띈다. 어지럽고 공격적이다.

서울시는 신축건물의 경우 간판 형태까지 인허가 대상에 포함시켜 심의를 하고, 간판이 창문을 가리지 않게 하며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만 쓰게 하겠다는데, 그러면 좀 나아지려나.

● 시각공해 덜어줄 도시디자인

5공화국 식의 일제 정비나 강제 철거 대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면서 좋은 간판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간판문제를 비롯한 도시디자인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뭐가 어때서? 꼭 외국인의 눈에 보기 좋아야 하나?'하는 식의 민족감정과 이상한 자존심까지 작용하는 것 같다.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시가 5월에 디자인서울 총괄본부라는 조직을 만들어 가장 살고 싶은 명품도시, 누구나 방문하고 싶은 관광도시, 보고 배워가는 디자인 중심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큰 변화다.

그때로부터 '고품격 디자인도시, 매력 있는 서울'이 강조되고 있다. 같은 차원의 일은 아니지만, 어제 성북구 석관동에서 '우리동네 숲 가꾸기'가 첫 결실을 본 것도 서울의 모습을 좋게 바꿔가는 일이어서 반갑다.

이제 디자인과 같은 가시적 형태만이 아니라 소리에도 좀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여의도에서 선유도까지 걸으면서 한가롭게 자연을 음미하던 사람이 야외시설에 잘 숨겨진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때문에 흥이 깨졌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성동구는 '음악이 흐르고 재난을 막는 하천'을 만든다고 한다.

가로등에 스피커를 달아 음악을 틀다가 홍수등 재난이 닥치면 비상방송을 한다는 것이다. 지역 방송국과 연계된 스피커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잘 모르지만, 공원이든 뭐든 갖춰 놓으면 '잔잔한 실내악'이 흘러야 한다고 믿는 건 미숙한 행정이다. 아무 소리도 없는 게 더 낫다.

그런데 지하철은 잠시도 편하게 해 주지를 않는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장난치거나 기대면 다칠 수 있습니다', '어린이나 노약자는 보호자와 함께 타시는 게 안전합니다' 이런 방송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자주 듣다가 '다치면 장난치거나 기댈 수 없습니다'라고 헷갈린 적도 있다. 뭐가 그렇게 알려 주고 가르쳐야 할 게 많은지, 시시콜콜 안내ㆍ계몽하는 것을 듣다 보면 '유모국가(Nanny State)'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일요일이면 서울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그 일대는 거대한 소음공해의 도가니가 된다. 건물의 창유리가 울리고 흔들릴 정도다. 서울시민들은 왜 이렇게 악쓰고 소리 질러야 할 일이 많을까.

서울은 변화가 심하고 역동적이어서 '즐거운 지옥'이며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데시벨이 높다지만, 휴일에는 마음 놓고 떠들어도 된다고 믿는 게 문제다.

● 소음도 줄여 품위 있는 도시를

서울시는 7월에 '행정현수막 없는 서울'을 선언했다. 시각공해와 예산낭비를 막는 일인데, '행정소음 없는 서울'도 추가로 선언하고 공공의 소음부터 되도록이면 줄여나가 일반 시민들의 소음 줄이기를 유도했으면 좋겠다.

20여년 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내버스를 탔을 때 도서관처럼 조용해 놀랍고 두려웠던 적이 있다. 북구의 독특한 침잠(沈潛)에 더해진 그들의 교양과 지성이 부러웠다.

서울시는 내년 2월까지 서울의 상징물을 선정하고 내년 4월까지 10개 거리를 '디자인 서울 거리'로 지정하겠다고 어제 발표했다. 파리 에펠탑이나 뉴욕 자유의 여신상처럼 독특한 상징물이 개발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것대로 추진하면서 서울을 좀더 차분하고 안온한 도시, 품위 있고 교양 있는 도시로 만들어가자. 악쓰는 것도 듣기 싫고 잔소리 듣는 것도 지겹다.

임철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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