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사건을 둘러싼 청와대의 대응 과정에서 의문이 풀리지 않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청와대는 “변 전 실장이 부인하기에 전혀 몰랐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수사권이 없어 밀도 있는 조사가 어려웠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단계에서부터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 보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청와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을 하지 않았거나, 의혹을 알고도 덮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나돈다.
청와대는 신정아씨가 지난해 두 차례 청와대를 출입한 적이 있다고 12일 밝혔다. 천호선 대변인은 13일 “법무부 장관에게 변 전 실장 의혹을 통보 받은 후 기록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서 변 전 실장 의혹이 언론 등을 통해 불거졌을 때 청와대는 신씨의 청와대 방문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는지 의문이다. 의혹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그런 간단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다. 더욱이 신씨가 피면회자를 변 전 실장이라고 적었다는데, 이를 청와대가 확인했다면 둘의 관계가 손쉽게 밝혀졌을 것이다. 청와대가 ‘완벽한’ 직무유기를 했거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부러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변 전 실장과 신씨 사건은 검찰이 수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변 전 실장 말만 믿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수사를 하는데, 청와대는 수사상황 체크 등도 하지 않고 변 전 실장 말대로 대통령에게 보고 했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계와 미술계에서는 신씨의 ‘뒷배’ 이야기가 파다했다. 변 전 실장이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더구나 변 전 실장은 불자이고 신씨는 동국대 교수다. ‘불교계’와 ‘미술’이라는 두 사람의 두 가지 공통분모가 세상에 다 알려졌는데 청와대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도 상식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깜이 안 된다”고 발언한 시점은 청와대 민정팀이 변 전 실장의 통화내역을 조사 중일 때였다.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대통령이 예단하고 나선 건 왜 였을까. 사실은 이 대목이 가장 민감하다. 혹시 노 대통령이 의혹의 실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의도를 갖고 이런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의구심이 곧장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청와대 몸통설’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이에 대한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리고 경우에 따라 관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을 하지 않는다면 의혹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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