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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많은 제주 마지막 海男임태삼씨/ "물질과 연연 30년… 지금도 바다가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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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많은 제주 마지막 海男임태삼씨/ "물질과 연연 30년… 지금도 바다가 편해요"

입력
2007.09.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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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제주 서귀포시 대정리 하모해수욕장 앞바다에서는 해녀 수백명이 참가한 가운데 ‘해상쓰레기 수거 잠수경연대회’가 열렸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은 해녀가 아닌 해남(海南) 임태삼(47)씨.

임씨는 1등을 하고서도 “쓰레기를 많이 줍는 대회라 힘 센 제가 우승 한 것 같다”며 “소라나 전복을 따는 대회였다면 수십 년 베테랑 해녀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느냐”고 쑥스러워 했다.

일하는데 남녀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원래 물질은 적극적인 성격의 제주 여자 몫이었다. 그래서 제주 여행 길에서 임씨 같은 해남을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물질을 하는 제주의 해남은 다섯명. 그들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으로 지금은 활발하게 물질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임씨는 그 다섯 중 최연소자다. 그것도 30년씩이나. 그의 뒤를 이어 바다에 뛰어드는 남자가 없으니 임씨는 마지막 해남이기도 하다.

임씨가 이 길에 접어든 것은 열 일곱 살 때다. 제주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어릴 때부터 바다를 좋아했던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물질과 평생의 연을 맺었다.

“여러 이유로 고등학교 가기가 여의치 않았던 데다 그때만 해도 바다에서 버는 돈이 직장인보다 많아 보였습니다.” 웬만한 여자보다 물질을 잘 한다는 주위의 칭찬, 잠수와 해산물 채취 능력이 뛰어나 상군(上群) 대접을 받던 어머니의 든든한 후원도 그를 바다에 뛰어들게 했다.

남자가 드문 세계였지만 그는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 나이 든 해녀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거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 오히려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에 들고 날 때마다 잠수복을 입었다 벗었다 해야 하지만, 남녀가 유별한데 해녀들과 한 자리에서 그 일을 할 수는 없는 법. 임씨는 “해녀들이 어촌계 앞 공동작업장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집에서 잠수복으로 차려 입는다”며 “30년째 하다 보니 잠수복 갈아입는 일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큰 고민 없이 시작한 바다 일이 어느새 30년이 됐고 그 사이 그 세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다의 오염과 그에 따른 수입의 감소다. 1970~1980년대만 해도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때는 바다가 깨끗해 물에 들면 잡을 것이 천지였다. 임씨의 표현에 따르면 손 닿는 곳마다 해산물이 널려 있었고 비싸다는 전복도 발에 차일 정도였다.

물질을 잘하는 상군 비바리의 월 300만원에는 못 미쳐도, 월 200만원을 족히 넘는 수입이 당시에는 큰 돈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때만 못하다. 바닷물이 오염되면서 해산물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며칠 물질을 해도 전복 한 마리 구경하기 어렵고 그나마 잡히는 소라도 몇 년 전 ㎏당 7,000원 선에서 지금은 2,000원 선으로 가격이 뚝 떨어졌다. 그의 최근 한달 수입은 70만~80만원인데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20년 전의 10분의 1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임씨는 요즘 두 일을 하고 있다. 물에 들어가든, 그렇지 않든 새벽 다섯시가 되면 열 마지기 남짓한 밭으로 뛰어가 마늘과 감자에 거름을 주고 잡초를 솎아낸다. 밭일에서 그가 올리는 수입은 물질에서 얻는 그것과 비슷하다. 이런 밭일을 물에 들어가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해야 한다.

바다에 들어가는 날은 더 바쁘다. 새벽 밭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뜨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먹은 뒤 잠수복을 입고 오전 8시께 물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입수를 하면 밥은 굶기 일쑤다. 한시가 아까운 터라 편하게 밥 한술 입에 떠넣을 새가 없다. 한바탕 물질을 끝내고 오후 4시께 육지로 나와서야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매달 음력 다섯 물(음력 14, 19일)에서 열 한물까지는 조수간만의 차 때문에 물에 들어갈 수 없으니 물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보름 남짓이다. 임씨는 “육지 사람에게는 제주 해녀의 자멱질이 로망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그저 힘든 일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정이 어려운데 제주도 등 공공기관의 무관심은 임씨와 해녀들을 더욱 기죽게 만든다. 매년 어촌계별로 잠수복 몇 벌 주는 것이 고작이며 그나마 몇 안 되는 지원이 최근 들어서는 더 줄어들고 있다. 불법 스쿠버다이버의 불법 어로도 문제다.

임씨는 “우리들은 한번 잠수해서 1, 2분 정도 물속을 유영하며 수심 15m 이상은 들어가지 않는다”며 “하지만 스쿠버다이버들은 1시간을 견딜 수 있는 산소통을 짊어 지고, 작살로 심해의 해산물을 싹쓸이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들의 불법행위만 아니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지만, ㉬챨?제대로 미치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임씨의 말을 듣고 있으면 바다 일은 고단의 연속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딸이 해녀가 되겠다면 한사코 말리겠다는 것도 일은 힘들고 돈벌이는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물에 드는 순간만큼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럴 때 천상 물질이 천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주=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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