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돌연한 사임에 권력무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이 계절 특유의 정취도 작용했겠지만, 흔히 하는 말로 그렇게 잘 나가던 정치인이 너무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지난해 총리 자리에 오를 때까지 52년 동안 운명은 늘 그의 편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꿈꿀 총리 자리에 오르는 순간 운명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때부터 그의 앞에는 진흙탕 길이 펼쳐졌고, 오랫동안 양탄자를 밟아 온 그가 헤쳐나가기에는 무리였다.
■그는 운이 좋았다. 정치명가의 '도련님'으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할아버지 히로시(寬)는 중의원 의원이었고, 외무성 장관을 지낸 아버지 신타로(晋太郞)는 1991년 급서할 당시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였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그 동생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형제 총리'로도 유명하다.
93년 정계 진출 이후 거듭된 그의 급속한 정치적 성장도 이런 집안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3선 의원으로서 자민당 간사장에 발탁될 정도의 눈에 띄는 '특별 대우'는 대북 강경론으로 얻은 인기와 상승작용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운이 나빴다. 취임한 지 세 달도 안 돼 행정개혁장관이 정치자금 허위 지출 비리로 사임했다. 비슷한 문제로 농수산성 장관이 자살했고, 후임자 둘이 연달아 물러났다. 정치개혁 바람을 타고 정치자금 지출까지 샅샅이 살피게 된 결과다. 총리의 '사람 보는 눈'이 문제가 되고, 능력에 대한 의심이 일었다.
하필이면 노회한 수완가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가 민주당을 이끌었으니,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여기에 연금기록 분실 사건까지 겹쳤으니 7월말의 참의원 선거는 일찌감치 자민당의 참패가 예정돼 있었다.
■애초에 절정의 인기를 누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후임이라는 것 자체가 불운이었다.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져서 어지간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에서 '운명의 신은 여신이어서 정복하려면 난폭하게 다루어야 한다'며 '운명은 유순한 사람보다 난폭한 사람에게 더 고분고분하다'고 밝혔다. 여성에 대한 시각은 낡았지만, 적극적 대처 능력을 강조한 점은 군주론>
돋보인다.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정치적 불운은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그의 행운 속에서 싹터온 셈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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