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17차 당대회 이후 세계는 퇀파이(團派)로 불리는 공청단파(共靑團派)를 다시 한번 주목할 것이다. 후진타오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직계인 퇀파이가 권력 핵심으로 크게 약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과거 상하이방이 누렸던 위세는 명실상부하게 이들의 몫이 된다.
후 주석이 오랫동안 근무한 공산당의 청년조직 공산주의청년단에서 유래된 파벌의 명칭처럼 공청단파들은 공청단 근무 경력이 있거나 후 주석과 가까운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후 주석이 공청단 서기를 물려준 리커창 랴오닝성 당서기를 비롯, 리위안차오 장쑤성서기, 왕양 충칭시 당서기, 류옌동(劉延東) 당 통일전선부장, 왕자오궈 전인대 부위원장 등이 핵심 인사들이다.
하지만 공청단파는 상하이방과 비교해 보면 아직은 초라하다. 공산혁명, 문화대혁명, 개혁 개방 등을 거치며 유구한 맥을 이어온 상하이방과 달리 공청단파는 공청단 1서기를 지내고 1981~1987년까지 총서기를 역임한 개혁파 정치인 후야오방(胡耀邦ㆍ1989년 사망) 집권 당시 태동했다.
후 주석의 공청단 선배인 왕자오궈가 후야오방의 측근으로 활약한 것도 이때이다. 공청단파의 세불리기는 1992년 후진타오 주석이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고 장쩌민(江澤民)의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시작됐다.
공청단파 성향은 개혁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 주석이 총서기에 오를 때 서방 언론들이 중국의 정치개혁을 낙관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공청단파의 취약점은 경제 전문가들이 없다는 점이다. 사상 이념 조직 분야에 주로 포진해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경제 부문에서 상하이방의 활약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이영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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