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다나카 하루코(42ㆍ여)씨는 지난달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평소 양팔을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의 어깨 통증으로 고생한 하루코씨는 쇼핑, 관광 일정 중 하루를 한방병원 방문으로 잡았다.
관광책자를 통해 병원을 정한 그녀는 일본어에 능숙한 의사와 진료 코디네이터를 만나 의사소통에 어려움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다소 생소한 침, 한약이었지만 치료를 받자 어깨 통증이 한결 나아졌다. 덕분에 남산 한옥마을, 경복궁 등을 즐겁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일본에서 한약을 택배로 받아 복용하고 있다.
박병모 자생한방병원 원장은 "1년 전 영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가 가능한 의료진으로 국제클리닉을 만들어 외국 환자 맞이에 나섰다"며 "지난해 8월 한 달에 100명 남짓했던 환자가 올해 5월에는 300명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은 국제클리닉 안에 진료지원팀을 따로 개설해 외국인 환자의 예약에서 내원 안내까지 1대1 코디네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돈 되는 관광산업'인 의료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도 본격적인 의료관광 상품을 준비 중이지만 싱가포르나 태국 등 주변국들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해 건강과 관련해 지출한 돈은 478억원이다.
반면 주변국들은 의료를 관광산업화해 막대한 외화를 챙기고 있다. 싱가포르는 2004년 한 해 외국인 환자 26만명을 받아 한국의 8배가 넘는 4,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2년까지 외국 환자 100만명을 불러들여 1조8,000억원을 벌겠다는 계획이다.
2003년 한 해 5,800억원을 벌어들인 태국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는 2002년 63만명에서 이듬해 97만3,500명으로 55% 급증한 뒤에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의 의료관광산업이 경쟁국에 뒤지는 이유는 우리의 의료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대한의학회가 2004년 의료기술 수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고 수준인 미국에 근접하거나 대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위ㆍ유방ㆍ폐ㆍ대장암 등 주요 암 치료수준은 선진국과 비슷하거나 우월했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국내 의료서비스에 대한 외국의 인지도가 낮고 언어문제, 전문인력 부족 등 외국환자 유치를 위한 인프라가 아직 충분치 않은 것"을 주요원인으로 꼽았다.
싱가포르에서는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한 '싱가포르 메디슨((Singapore Medicine)'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의료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태국 정부도 2004년 '태국을 아시아 건강의 수도로 만들겠다'며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태국 공중보건부는 시설 장비 인력 등이 우수한 16개 민간병원에 대해 영문 홍보책자를 만드는 등 대외홍보에 열을 올렸다. 또한 2005년부터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목적으로 태국에 오는 외국인들과 상시 방문자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 문호를 넓혔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 단계. 한국 의료의 대외 인지도를 높이고자 민관 합동인 '한국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가 지난 3월 구성됐다. 또 외국인 전담 코디네이터 양성 교육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의료계에선 홍보와 전문인력 양성도 중요하지만, 의료관광의 문호를 넓히고 의료기관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피부과성형외과 원장은 "인도처럼 1년짜리 메디컬 비자를 발급해 자국 의료관광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던가, 싱가포르처럼 민간 병원에 대해 영리 법인화를 허용해 자유로운 마케팅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잘 치른 컨벤션 행사, 자동차 2000대 수출과 맞먹어"
이달 초 5,000명 가까운 전세계 폐암 전문가들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모여들었다. 전체 회의가 열리는 컨벤션홀은 50여개 나라에서 참가한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2일부터 6일까지 열린 세계폐암학회 학술대회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는 외국인만 4,600여명이 등록했다. 동반 가족과 전시업체, 기타 대회 관계자까지 합치면 6,000명 이상의 외국인 방문객을 유치한 셈이다.
행사기간 중 리츠칼튼, 라마다호텔, 인터컨티넨탈 등 주변 특급호텔 객실은 거의 예약이 꽉 찼다. 코엑스 컨벤션 마케팅팀 정진욱 과장은 "이번 행사로 2,057명의 고용을 창출했고, 외국인 참가자가 직접 지출한 200억원을 포함해 약 832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했다. 이를 수출 규모로 환산하면 1,500cc급 자동차 2,000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고 주장했다.
컨벤션산업은 대형 회의장이나 연회장, 전시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대규모 국제회의나 전시회를 유치하는 산업이다. 컨벤션 참가자는 컨벤션 참가자는 일반 관광객보다 많은 돈을 쓰는 VIP 고객이다. 머무르는 기간이 길고 지출이 많아 호텔 식음료 관광 항공 등 관련 서비스 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효과가 있다. '서비스 산업의 꽃'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컨벤션 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행사 유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2004년 컨벤션 산업으로 만 1,22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170만 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했다. 독일도 같은 해 230억유로를 벌어들였다.
우리도 컨벤션 분야에선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2006년 한해동안 전세계에서 총 8,871건의 국제회의가 개최됐다. 우리는 185건을 유치해 세계 16위를 차지했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세계 10위), 중국(세계 14위)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주변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자리를 지키기도 쉽지 않다. 특히 컨벤션센터를 받쳐주는 숙박시설이나 엔터테인먼트, 쇼핑공간 등 관련 인프라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마카오에 들어선 종합카니노리조트 '베네시안'은 단순한 도박 시설이 아니다. 일산 킨텍스의 2배 크기인 컨벤션 센터를 중심으로 박람회장 6개에 회의장 108개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동시에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베네시안은 10월 켄 페어의 메가쇼를 시작으로 앞으로 2년간 44개 전시회 개최를 이미 받아놓은 상태. 지구촌 최고의 컨벤션 도시를 꿈꾸는 마카오 당국은 2010년에는 500여 개의 국제전시회와 컨벤션이 개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신옥자 컨벤션진흥팀장은 "마카오, 홍콩을 끼고 있는 중국의 성장세도 무섭지만, 아직 큰 움직임이 없는 일본의 컨벤션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 지역마다 컨벤션센터 없는 곳이 없고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어 우리에겐 위협적"이라고 경고했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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