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은 초반 3연전에서 대세가 갈렸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던 대세론의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의 예상밖 돌풍에 휩싸여 추락하고 말았다.
3월9일 제주 첫 경선부터 이변이었다. 동교동 구파의 지지를 업고 압도적 1위가 예상됐던 이인제 후보(172표, 25.6%)는 한화갑 후보(175표, 26.1%)에 이어 2위로 밀렸다. 노무현 후보가 3위(125표, 18.6%)로 선전하며 파란을 예고했다.
하루 뒤 울산에서도 노 후보는 298표(29.4%)로 1위를 차지한 반면 이 후보는 3위(222표, 21.9%)에 그쳤다. 제주와 울산의 선거인단 규모는 작았지만 국민 관심이 집중됐던 만큼 파급효과는 컸다. 그 사이 김근태 후보의 사퇴와 이 후보측의 울산 돈봉투 살포 사건도 이후 판도에 악영향을 미쳤다.
16일 광주에서 영남 출신 노 후보가 압도적 1위(37.9%)를 차지하며 대세를 굳혔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를 대안으로 노 후보가 떠오르면서 민주당의 정치적 텃밭인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후 이 후보는 출신지인 대전ㆍ충남에서 연달아 1위를 차지했지만 대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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