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집에서 압수한 컴퓨터를 살펴보던 검찰 수사관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7월16일 신씨가 부랴부랴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삭제한 수백통의 이메일 을 복원한 결과, 변양균(58)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보낸 100여통의 이메일이 따로 보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다른 거물급 인사에 앞서 변 전 실장과 신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먼저 공개한 것도 변 전 실장의 이메일이 따로 보관된 덕분에 일목요연하게 전체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왜 그랬을까. 우선 자기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무적인 관계로 주고 받은 다른 이메일과는 달리 애틋한 감정이 담긴 연서(戀書)는 별도로 간직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변 전 실장이 빼어난 문장력을 자랑한다는 사실은 이 같은 추론에 힘을 보탠다. 한 관계자는 “변 전 실장은 대학시절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로 글 솜씨가 뛰어나다”며 “감수성이 예민한 신씨로서는 미문(美文)에 담긴 사랑 고백은 별도로 관리할 만큼의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력을 위조하고, 다수의 거물급 인사와 커넥션을 유지한 신씨의 행적에 무게를 두는 쪽에서는 모종의 ‘노림수’라고 분석한다. ‘순수한 감정의 발로’에 따른 자연스런 행동이 아니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변 전 실장의 이메일이 쉽게 발견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것이다.
우선 변 전 실장을 신씨 비호의 핵심 실세로 보는 측에서는 별도 관리된 이메일의 용도를 협박용으로 추론한다. 신씨가 도피성 출국을 한 줄 알면서도 검찰이 수사 착수 44일째에야 뒤늦게 신씨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한 데에도 신씨의 협박에 눌린 변 전 실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변 전 실장을 뛰어넘는 배후 세력의 존재를 확신하는 쪽에서는 ‘꼬리 자르기’ 가능성을 제기한다. 재기를 노리는 신씨가 ‘몸통’을 지키기 위해 ‘깃털’인 변 전 실장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켰다는 뜻이다. 검찰 관계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지만, 모든 이메일이 복구된 만큼 ‘신정아 커넥션’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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