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의원의 이미지 하나는 '싸가지 없이 옳은 얘기 하는 사람'이다. 두 해 전 같은 당의 김영춘 의원이 "유시민은 저토록 옳은 소리를 왜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하는 원망을 기자들 앞에서 흘린 뒤 이 이미지가 굳어졌다.
유시민씨 본인도 자신의 말에 날이 서 있다는 걸 인정하는 눈치다. 그로서는 크게 손해날 일도 아니다. 김영춘씨의 평가를 곧이곧대로 따르자면, 그는 적어도 '옳은 소리'를 하는 셈이니까.
● 신의 있는 정치인 유시민?
적잖은 유권자들이 소위 이 '김영춘 어록'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이다. 나 역시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제가 하나 있다. 김영춘씨의 말이, "옳은 얘기를 할 때조차 유시민의 말버릇은 싸가지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는 전제다.
다시 말해 "유시민은 늘 옳은 소리를 하는데 단지 싸가지 없는 게 문제다"라는 판단엔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내 생각에, 유시민씨는 흔히 옳지 않은 소리를, 또는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는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
최근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그가 '신의'를 내세우며 경쟁자들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것도 그렇다. 그는 정말 자신을 신의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일까? 지난 5년간 공적으로 쏟아놓은 말들을 수없이 뒤집으면서, 유시민씨는 자신이 신의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능주의자라는 걸 충분히 증명했다.
오죽했으면, "유시민이 안 한다 하면 그건 반드시 한다는 뜻이고, 한다 하면 그건 반드시 안 한다는 뜻이다"라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그 점에서 유시민씨는 한국에서 가장 '예측가능한' 정치인에 속할지도 모른다.
다섯 해 전 그가 이인제 의원을 그렇게 평가한 바로 그 맥락에서 말이다. 유시민씨가 손학규씨나 정동영씨에 견줘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건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그들보다 더 신의 있는 정치인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옳은 소리든 그른 소리든, 공인의 말투는 싸가지가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 '싸가지 없다'는 말도 싸가지 없는 말이다. 뜻이 고스란히 포개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부터 '기품 없다'나 '예의 없다'로 바꾸겠다.
유시민씨는 옳은 말을 할 때조차 더러 기품이 없고 예의가 없다. 그의 능변과 논리와 재치와 지성이 그 기품 없음을 눅여주긴 하지만, 말끔히 씻어내지는 못한다.
시장판의 싸움에서야 기품 없는 게 무기일 수 있다. 기품 찾고 예의 찾다 보면 약하게 보이고 사기도 꺾인다. 그러나 문명사회의 정치판에서까지 기품 없음이 무기가 된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정치도 그 본질이 싸움인데 기품 찾다 지느니 기품 없이 이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따지면 대답이 좀 궁색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슬픈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기품 없음이 무기가 되면, 싸움이 진행될수록 당사자들은 점점 더 기품이 없어진다. 그래서 점점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내 기억에, 유시민씨도 언젠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고양이 앞 쥐 신세가 된 적이 있다. 그가 상대방에게 논리로 밀려서 그랬던 게 아니다.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한없이 비천해지는 데 대한 거리낌이, 유시민씨에게보다 토론 상대자에게 더 부족했기 때문이다.
● 우리가 혈거인도 아닌데…
'김영춘 어록'으로 얘기를 시작하다 보니 유시민씨 험담만 늘어놓은 셈이 됐다. 그러나 기품 없음에서 유시민씨가 소위 중도 정파 내 라이벌들과 차원이 다른 악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박근혜 양쪽 캠프는 유시민씨도 울고 가게 할 만큼 기품이 없었다. 안 그럴 것 같던 민주노동당마저, 대선 후보 경선을 하면서 캠프끼리 더러 독이 묻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게 위선일지라도, 우리 정치 기품 있게 좀 해 보자. 우리가 수 만 년 전 혈거인들도 아니고.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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