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이다. 1979년 38세로 요절한 하길종 감독의 동생, <깃발 없는 기수> <불꽃> 의 배우를 거쳐 <태> <땡볕> 의 연출자로 70, 80년대를 풍미했던 하명중 감독. 벌써 환갑이 된 그가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12일 개봉)를 들고 돌아왔다. 그의 귀거래사에 아내와 두 아들이 기꺼이 힘을 보탰다. “하명중은 죽지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이야기를 찾고 있었을 뿐.” 어머니는> 땡볕> 태> 불꽃> 깃발>
그동안 그 ‘이야기’라는 것들을 몇 개 만났다. 남북합작의 춘향전, 동학혁명, 이문열의 명성황후 등. 그러나 욕심은 너무 컸고, 현실은 팍팍했다. 감각적인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충무로의 바뀐 세태에서 그의 ‘진지한 메시지 추구’는 늘 벽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2004년 4월 그는 막 출간된 최인호의 자전적 소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를 만났다. “당시 최인호씨는 60 나이에 신문연재소설을 두 편이나 쓰고 있었다. 마치 청년소설가로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도대체 그 힘은 뭘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 소설을 읽고 알았다. 바로 그가 몰랐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런데 세상은 어떤가. 그 어머니를 죽이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버려지고, 현실이 힘들다고 그 사랑을 버리고 있다. 그 사랑을 줄 아이조차 아예 낳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더욱 역설적이고 사회고발적 제목의 소설을 하명중 감독은 영화로 만들어 관객에게 묻고 싶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 모두 참사랑의 갈증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가 “지상에 실존하는 최고 사랑인 어머니 얘기를 해보자”고 할 때만 해도 영화에 가족 모두 참여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처음에는 “너무 낡은 얘기가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어머니 사랑을 말하고, 어머니로서 자식사랑을 말하면서 조금은 다른 시각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영화를 전공한 두 아들과 1972년 하 감독의 <화분> 부터 제작자로 일해온 아내(박경애씨)도 자연스럽게 영화 속으로 들어왔다. 화분>
먼저 주인공인 작가 최(인)호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큰 아들 상원(34)씨. 대학(동국대 연극학과)시절 연기공부를 했으니까 카메오(단역)로라도 출연하고 싶어 가명으로 오디션에 참가했다. “의외로 최고 점수를 받았어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차점자를 캐스팅 했어요. 그런데 운명인지 그 친구가 사정이 있어 못하게 됐어요.”
아버지는 상원이가 주연을 맡은 게 내키지 않았다. ‘내 경험으로 연기란 죽기살기로 해야 하는데. 더구나 신인이면.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행히 다른 일(영화사 기획업무)을 6개월 쉬고 연기에만 전념하게 돼 허락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아버지는 철저했다. 첫마디가 “약속하자. 오늘부터 너와 난 감독과 배우다” 였다.
성원씨는 지금도 가끔 “아버지” 대신 “감독님”이란 말이 튀어나온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더라도 캐릭터 소화능력이 있어야 캐스팅할 텐데. “있지요. 최인호씨와는 74년 <별들의 고향> 때부터 만나 성격을 잘 알지요. 개구장이에 익살스럽고. 상원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거든요. ” 별들의>
다음은 영상원 출신으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했고, 감독 준비 중 이던 둘째 아들 준원(31)씨. 젊은 세대로 스태프를 짜야 하는 하 감독으로서는 그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그가 절대 필요했다. 결국 자기 작품을 1년 연기하기로 하고 프로듀서로 뛰어들었다. “오히려 제가 배웠어요. 철저한 사전준비에서 현장에서의 집중도와 에너지, 철저한 연기지도까지. 요즘은 ‘이런 식으로’가 안 통해요.” 괴물>
여기에 제작비(17억원) 투자를 위해 동분서주한 어머니. 제작자로서 그는 기획단계에서는 까다롭게 굴었지만 일단 촬영을 시작하자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족을 믿으니까. 준원씨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했다. 마치 영화 속 어머니처럼.
2년 공들여 각본 쓰고, 감독에 <땡볕> 이후 23년 만에 주연까지 ‘1인3역’을 해낸 하명중 감독은 그러나 정작 살면서 “엄마”를 불러본 적이 없다. 두 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당연히 어머니의 사랑도, 그리움도 느끼지도 못한다. 그 땡볕>
래서 이따금 두 아들과 아내, 영화 속 최(인)호와 그의 어머니 모습이 부럽다고 한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시(詩)입니다. 태어났다는 것, 어머니 자체가 큰 드라마인데 무슨 기승전결이 필요합니까. 각자 마음 속, 기억 속의 첫사랑인 어머니를 만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너무 좋아 눈물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어머니는>
연출자로 공부하면서 17년이란 시간을 보냈다는 하명중 감독. 그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가 제2기 영화인생의 시작이라고 했다. “한국적인 이야기, 이 시대 화두를 찾티?작지만 큰 영화로 만들어야지요.” 어머니는>
이대현 문화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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