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석(33)을 만나기 앞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이 남자가 그토록 인기를 끌어 모을까.” 뮤지컬 무대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지만 TV로 대부분의 연예인을 만나는 일반 시청자들에게 오만석은 그저 까무잡잡한 얼굴에 촌스러운 행동을 하던 순진한 청년 택기(KBS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 의 주인공)로 기억되는 정도 아닐까. 포도밭>
그나마 스크린에 비쳤던 그는 더욱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게이로 분한 영화 <라이어> 의 알렉스, 마약조직원 점박이로 연기한 <수> 에서 보여진 그의 모습은 아무래도 청춘스타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수> 라이어>
SBS 월화 사극 <왕과 나> 에서 주인공인 내시(內侍) 김처선 역을 맡은 오만석은 그러나 이런 선입견으로 마주하기엔 한마디로 기대 이상의 배우다. 김재형 감독으로부터 “내시 연기에 가장 적합한 연기자”라는 평을 받으며, 시대를 풍미했던 김처선 역을 맡은 오만석. 뮤지컬 <헤드윅> 에서 목격했던 소름돋는 그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 팬에게는 오만석의 인기 비결은 어쩌면 수학 전공 대학생이 푸는 인수분해처럼 명료하지 않을까. 헤드윅> 왕과>
오만석을 만났다. 내시라는, 사극에서 왕보다 더욱 고정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 캐릭터를 어떻게 요리할지 듣고 싶어서다. ‘천 가지 얼굴, 만 가지 감성을 지닌 배우’라 불린 오만석이라면 뭔가 다른 연기가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다.“내시라면 모두 허리가 굽고 중성적인 목소리를 내 남성과 거리가 먼 사람들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김처선을 비롯해 많은 내시가 진짜 남자보다 더욱 남성다운 풍모로 등장합니다. 내시의 겉모양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시라는 인간의 내면과 이들의 삶의 정체성에 집중한 드라마입니다. 나름대로 내시의 모습을 체득하기 위해 팬들이 보내준 각종 자료를 섭렵하고 역사책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미리 연기연습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극을 진행하면서 김처선의 캐릭터를 배워가려고 합니다. 나도 나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배역을 미리 예상하고 연기를 하겠어요.”
<왕과 나> 의 김처선은 사랑을 위해 남성을 버리고, 인생을 통째로 내다 바친 남자다. 그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여인을 평생 옆에서 바라만 봐야 하고 종국엔 죽음을 바치는 운명을 지녔다. 양물을 자르며 칠정오욕(七情五慾)도 도려냈던 그를 연기한다는 게 만만치 않다. 왕과>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고 시놉시스를 봤는데 ‘이거다’ 싶더군요. 배우로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배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쉽지않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우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겠죠. 인물에 대한 분석, 상황 대처 모두에 우선하는 것은 체력입니다. 틈만 나면 공을 쫓아 뛰는 운동습관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김처선의 감정을 전달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저에게도 딱 부러지는 답은 없습니다. 대본이라는 설계도에 오만석이라는 배우가 지닌 심성과 영혼을 불어넣어 감독과 시청자가 원하는 역할을 완성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겠죠. 그 다음은 <왕과 나> 의 제목이 지닌 메타포와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극의 숨은 주제를 음미하며 드라마를 즐기는 시청자의 몫입니다.” 왕과>
오만석은 스스로 연예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배우일 뿐, 그래서 인기에도 무덤덤하다. 지난 일요일에는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왔을 정도다. “<포도밭 그 사나이> 이전엔 지하철, 버스를 타고 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불편함이 없었죠. 최근 들어 팬들이 그나마 많아져 다니기 좀 힘든 정도지 대중적인 인기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냥 배우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광고주들에 어필하는 얼굴이 아니라 그런지 아직 CF 제안도 없고요.” 포도밭>
1999년 연극 <파우스트> 로 데뷔한 후 뮤지컬 <록키 호러 픽처쇼> <헤드윅> 등 굵직한 무대 경력을 갖춘 그에게 최근의 스크린과 TV에서의 성공은 어떤 의미일까. “영역에 선을 그어놓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일 뿐 항상 몸과 마음은 무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헤드윅> 록키> 파우스트>
어서 무대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앞으로 1년여 정도는 <왕과 나> 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년에 창작뮤지컬 연출 계획이 있고 수년 내 <헤드윅> 공연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헤드윅> 왕과>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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