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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두번째 시집 내 "우리의 詩를 버리면 그의 詩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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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두번째 시집 내 "우리의 詩를 버리면 그의 詩가 읽힌다"

입력
2007.09.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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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단의 첨단’ 황병승(37) 시인이 두 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 (문학과지성사 발행)을 냈다.

2년 전 모호한 성(性)의 퀴어적 주체들을 둘러싼 낯설고도 잔혹한 세계를 감각적으로 그린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를 내놓은 이래 황씨에겐 “시 아닌 것을 긁어 모아 시를 만들어 내는 연금술사”(평론가 신형철), “우리 시단에 새로운 시의 지도를 그리는 자”(시인 김혜순), “한국 현대시의 지루한 표준성을 날려버릴 강력한 뇌관”(평론가 이광호) 등 절찬이 쏟아졌다.

잠잠하던 시단에 ‘미래파 논쟁’이란 첨예한 전선이 그어진 것도 이 ‘괴물 시인’의 돌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번 시집은 여러 혼종 주체를 내세워 분열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면에서 전작과 유사하고, 퀴어적 요소를 줄이고 이야기를 살렸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황씨는 “이미지나 언술을 비틀어 표현하는 재미에 충실했던 첫 시집에 비한다면 서사적인 면이 강화된 이번 책이 독자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사에 충실하다보니 책에 실린 시 40편의 분량이 180쪽에 이를 만큼 긴 시가 많다. 황씨는 시구를 반복하거나, 시 속에 짧은 시를 이탤릭체로 삽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긴 시에 음악성을 부여했다. “시와 소설의 모호한 경계에서의 밀고 당기는 재미”가 그가 밝히는 장시 쓰기의 묘미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확실히 친절해졌다. ‘음악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름다운 센텐스’를 찾아 방랑하는 마약 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눈보라 속을 날아서> 의 경우 심플한 구도와 함께 처연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불륜과 폭력, 연민으로 얽힌 9명을 한꺼번에 살인 사건에 연루시키는 고난도 퍼즐을 짰던 전작의 <혼다의 오ㆍ세계 살인사건> 과 대별된다.

하지만 상당수의 작품은 여전히 읽어내기에 녹록치 않다. “이야기를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하는 대신, 부조리한 상황, 분열된 인물 등을 통해 비틀어 낯설게 표현하는 것이 내 시적 지향”이라고 말하는 황씨는 독자와의 손쉬운 소통을 위해 작품 속 복잡한 알레고리를 설계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니 우리가 다가서는 수밖에. 고무적인 것은 우리가 시에 대해 품고 있던 정형화된 관념을 버릴수록 그의 시가 조금씩 ‘느껴진다’는 것. 이해를 독촉하는 이성의 풀을 꺾고 그 모호와 혼종의 세계에 몸을 맡기면, 쓰지 않고 버려뒀던 감각들이 저릿저릿해온다는 것. 황씨는 “세상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난해한 시는 없다”며 이 새로운 시적 체험을 독려한다.

그런데 황씨는 이제 ‘시코쿠’들의 세계가 재미없어졌단다. 그는 “이번 시집을 <여장남자 시코쿠> 의 속편이자 완결편으로 삼으려 한다”며 “세 번째 시집에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충만하다”고 말한다. ‘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는 시인에게 갱신의 고통 없이 익숙해진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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