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돈 몇 백억원을 비자금으로 빼돌린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이 선고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항소심 법원이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벌총수의 반사회적 경제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당위론보다 경제ㆍ사회적 기여를 배려해야 한다는 현실론 또는 온정론에 기운 판결이다. 법원은 물론 엇갈리는 법익을 놓고 고심한 끝에 정 회장이 자유로이 기업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 경제ㆍ사회적으로 유익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액 횡령 등 경제질서에 해악이 큰 특정경제범죄를 특별히 엄벌하도록 규정한 법 정신과 사회적 합의에 어긋나는 온정적 판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정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는 기업인 경제범죄, 특히 재벌 총수들의 범죄에 너그러운 법원 관행에 비춰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최근 경제개혁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된 기업인 149명의 84%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특히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기업인의 절반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여기에 비춰 재벌총수에 대한 관용을 유난히 시비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관행에 사회가 익숙하다고 해서 그대로 용인할 수는 없다. 특히 재벌총수가 법정에 서면 앞장서 관용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난 현상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일찍이 특정 경제범죄를 가중처벌하는 특별법을 만든 것은 기업과 경제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이를 외면한 채 사회적 책임이 무거운 재벌총수의 경제범죄를 너그럽게 처리하는 것은 법과 경제질서의 확립을 저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재벌 총수든 일반 기업인이든 반드시 실형을 살게 해야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흔히 편향된 온정주의는 국민의 법의식을 왜곡하고, 법치주의의 기반을 위협한다. 사회와 법원이 함께 시장논리에 이끌려 경제범죄를 적당히 관용하는 관행이 굳어질수록, 그토록 강조하는 경제의 투명성과 신뢰는 추락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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