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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누구시더라?" 싸리비 보살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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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누구시더라?" 싸리비 보살의 법문

입력
2007.09.11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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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땅 어느 암자에서 하루 세 번씩 정갈하게 마당을 쓸며 살았다는 어떤 늙은 보살 이야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점심, 해질녘이면 그녀는 싸리비로 정성스레 암자 마당을 쓸곤 했다고 한다.

그 암자에 머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전해준 얘기다. 나도 그 싸리비 보살을 한번 쯤 만나보고 싶었지만 엘리엇의 시 <프로프록의 연가> 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언젠가 그 얼굴을 만날 시간은 있으리라, 시간은 있으리라” 하다가 이제는 그럴 시간이 영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 속에 주저앉아 있다. 그녀의 얘기를 전해들은 것이 한참 전 일이니까 그가 지금도 마당을 쓸며 살고 있을 것 같지 않다.

내가 그 보살 얘기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녀의 빗자루 질 때문만은 아니다. 빗자루 얘기 말고도 “누구시더라?”의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암자에 하루 이틀 머문 사람이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며 아침 인사라도 할라치면 보살은 빗자루 질 하다 말고 생전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처럼 틀니를 덜그럭거리며 “누구시더라?”로 인사를 받곤 했다는 것이 그 대목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아침에 만난 사람도 낮에 보면 “누구시더라?”, 낮에 이름을 댄 사람을 저녁에 만나면 또 “누구시더라?”다. “낮에 인사드렸잖아요, 저 아무개 아무개요” 그러면 보살은 아이처럼 웃으며 “아, 그랬나요?” 했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마당 쓸던 손 멈추고 틀니 덜그럭거리며 또 어김없이 되묻기를 “누구시더라?”

나는 내게 끊임없이 “너는 누구냐?”고 되묻는 책을 좋아한다. 인생을 바꾼 책, 그러면 “아, 이 책이요”라며 책 하나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 축에 끼지 못한다. 너는 누구냐고 내게 묻는 책은 한 두 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을 만나면서 내가 궁극적으로 내게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너는 누구인가? 그러나 네가 누구인가는 마침내는 중요하지 않다. 너는 너보다 더 큰 것, 너를 연결할 더 큰 어떤 것을 찾았는가? 싸리비 보살의 법문대로다. 누구시더라, 자기를 자기라고 조석으로 우기는 당신은?

도정일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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