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일본 나고야(名古屋)시 인근의 도요타 쓰쓰미(堤) 공장을 방문했다. 37년 전 건립된 낡은 공장에서 근로자 6,300명이 2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 라인에서 6개 차종을 동시에 조립하는 복잡한 구조인데도 희한하게 부품 재고율이 '0'였다. 부품이 떨어지면 컴퓨터가 자동 인식해 협력 부품업체에 주문을 내고, 그 즉시 별도 품질검사 없이 해당 부품이 조립라인으로 투입됐다.
협력업체를 100% 신뢰하기 때문이란다. 도요타 관계자는 "협력업체가 발전해야 도요타도 성장한다는 상생정신이 부품 재고율 '0'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도요타 생산시스템(TPS)'의 핵심인 '라인 정지 시스템'은 근로자 제안으로 이뤄졌다. 자기 조립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모든 공정을 중단한 채 문제점을 찾아내는 시스템이다.
도요타 근로자들이 작년 1년간 제출한 작업개선 아이디어는 64만건. 1인당 평균 월 1건씩이다. 국내 대기업이라면 공정 개선에 크게 기여한 근로자에게 수 억원의 포상금을 줬겠지만, 도요타가 아이디어 채택 근로자에게 주는 돈은 불과 500엔(약 4,000원)~20만엔(163만원)이다.
도요타는 올해 GM을 제치고 세계 자동차업계 1위에 올라설 게 확실하다. 지난해엔 사상 최고인 2조2,000억엔(약 18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노사가 올해 합의한 기본급 인상분은 불과 1,000엔(8,150원)이다.
첨단기술 개발과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가 더 시급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성과급 시스템이 있긴 하나, 국내 대기업처럼 조 단위 순이익이 났다고 해서 수천만원씩 뭉텅이 성과급을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근로자들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세계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도요타가 약 3만개의 부품을 조립해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 시간은 약 20시간으로 세계 자동차업체 중 가장 빠르다.
도요타 생산시스템이 새로운 건 아니다. 쓰쓰미 공장만해도 종일 외부 관람객이 붐빌 정도로 전 생산과정이 공개돼 있다. 공장 시설은 오히려 우리나라가 더 첨단이다. 근로자들의 숙련도도 비슷하다.
그렇지만 자동차 품질과 생산성에는 큰 차이가 난다.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도요타 관계자는 "근로자들의 열정과 노력, '최고'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들었다. 도요타 근로자들이 56년간 무파업을 일궈내며 '도요타는 내 회사'라는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데는 근로자를 가족처럼 아끼는 경영진의 직원존중 정신과 투명한 회사 운영이 깔려 있다.
노사문제를 사전 예방하기 위한 노력도 감동적이다. 도요타는 각종 비공식 모임을 활성화,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쌍방향 의사소통이 그 어느 회사보다도 원활하다.
현대차의 작년 영업이익은 도요타의 15분의 1 수준(1조2,344억원)이었지만, 기본급을 7만665원이나 올렸다. 맥킨지에 따르면 현대차 임금은 도요타보다 27%나 높다.
이런데도 현대차 노사는 최근 근로자 1인당 평균 870만원의 임금을 올리기로 합의했다. 현대차가 차량 한대를 조립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3시간. 적자 누적으로 쇠락의 길에 접어든 미국의 GM(22.2시간), 포드(23.2시간)와 비교해도 한참 뒤진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노사안정 여부가 기업경쟁력의 관건이 되고 있다. 노사관계가 안정된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노사관계가 불안한 기업의 3배에 달한다.
현대차가 생산성은 제자리 걸음인 상태에서 매년 임금만 올린다면 과도한 인건비와 복지비를 감당 못해 경영위기에 빠진 GM과 포드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고재학 경제산업부 차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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