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즉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등 성(性)적 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를 ‘커밍아웃’이라고 한다. ‘커밍아웃 오브 더 클로짓’ 즉 ‘벽장 밖으로 나가기’라는 표현의 준말이다.
한국에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이 전격 소개된 것은 동성애자운동이 활성화된 1995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대중에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9월 배우 홍석천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면서부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감춰온 사실을 고백하는 행위’를 뭉뚱그려 ‘커밍아웃’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서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 도드라진다. 현재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학력/경력 위조 논란에선 ‘학력 커밍아웃’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
본디 19세기까지 커밍아웃이란 잘 교육받은 아가씨가 사교계에 처음 선뵈는 일을 뜻했다. 그것을 게이 하위문화에서 변용하기 시작했고, 성적 소수자의 인권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지금의 뜻으로 자리 잡았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커밍아웃이란 실천 프로그램을 제창한 사람은 독일인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다. 때는 1869년이었다. 당연히 역사는 그를 ‘스스로 게이임을 공표한 최초의 인물’로 기념한다. 이후 1914년엔 마그누스 히르슈펠트가 동성애자를 ‘억압받는 소수’로 규정함으로써 정치적 인권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 최초로 동성애자의 인권을 주장하며 커밍아웃한 인물은 아나키스트이자 시인인 로버트 던컨이다. 1944년의 일이었다. 1950년엔 공산주의자 해리 헤이가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정치조직인 메타친 협회를 조직했다. 초유의 성적 소수자 봉기인 스톤월 폭동이 발발한 것은 1969년 6월 28일. 이후 본격적인 LGBT 운동에 불이 붙었다.
스톤월 봉기 이후, 1970년대엔 소위 ‘성의 해방’이 이어졌고, 1980년대엔 ‘에이즈의 위기’가 닥쳤지만, 어쨌든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신장돼왔다. 현재 파리와 베를린의 시장직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정치인이 맡고 있고, 요즘엔 한국의 케이블 방송에서조차 LGBT 관련 프로그램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아직 사회의 차별은 공고하고, 갈 길은 멀고도 멀다.
그런데, ‘벽장의 은유’ 또한 LGBT 문화의 전개와 함께 성장해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국의 가십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무스토는 벽장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주인 잃은 벽장: 동성애자임을 세상에 공표한 경우. 둘째, 유리 벽장: 동성애자임을 온 세상이 알지만 공식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경우. 셋째, 철제 벽장: 기혼자이고, 동성애자임을 숨기는 경우. 넷째, 제 무덤으로서의 벽장: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떠들기만 해봐, 당장 고소해버릴 테다”라는 식의 자세로 사는 경우.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보수파 정치인 래리 크레이그는 지난 1일 ‘화장실 음란 행위’에 책임을 지고 상원의원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가, 3일 뒤 사퇴 선언을 번복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전통적인 철제 벽장에 감춘 채 함부로 동성애자 차별 발언을 일삼다가 문짝이 확 열리는 바람에 패가망신하는 꼴이다.
배우 루크 맥팔레인과의 동성 열애설로 소위 ‘미드족’ 팬들의 가슴을 싱숭생숭하게 만든 배우 ‘석호필’ 즉 웬트워스 밀러는 어떤가. 대변인을 통해 자신이 게이임을 부정한 적이 있으니 철제 벽장에 해당하는 것 같지만, 그리 애써 남의 눈을 피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처신에 따라) 유리 벽장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커밍아웃을 해준다면, 이야기는 다르겠다. 하지만, 연륜이 짧은 배우가 그럴 가능성은 낮다.
유명 명사의 삶을 뒤져 게이다, 아니다 떠드는 일이 손쉬워진 배경엔, 1990년대의 ‘명사 아우팅 전략’이 있다. 말 그대로, 유명인의 성 정체성을 공표해버리는 다소 과격한 방법. 1993년 게이 칼럼니스트 미켈란젤로 시뇨넬리가 주창하고 실행한 ‘아우팅 전략’의 효과는 상당했다. 벽장 속의 성 정체성이 강제 호출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명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입장을 서둘러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미국 사회가 게이 명사를 대하는 태도는 급속도로 개선됐다.
허나, 진정으로 흥미로운 것은 유리 벽장이다. 삼척동자가 봐도 게이임이 분명해 어쩔 수 없이 유리 벽장 속에서 살아온 유명인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하지만 최신 유리 벽장은 좀 다르다. 사적 영역에서는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데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성 정체성에 관한 공식적인 질문엔 답하지 않는 이들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철도왕 반더빌트’의 외증손자이자 유력 언론인인 앤더슨 쿠퍼다. 사회적 편견에 의해 활동에 제약을 받는 일은 피하면서도 게이로서 누릴 것은 다 누리고, 한편으론 대중의 호기심을 극대화시켜 홍보 효과까지 누리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쿨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무임승차’로 간주해 곱게 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유리 벽장을 운영할 한국 최초의 명사는 누가 될까?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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