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서남쪽으로 30~40분 차를 달리면 흰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좁다란 도로가 나온다. 옐친 전 대통령 등 모스크바의 고관대작과 부자들의 별장촌으로 알려진 이지노쯔바 입구다.
이곳에는 모스크바 시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가 하나 있다. 바로 억만장자만을 위한 명품관 ‘럭셔리 빌리지’다.
2년 전 공사가 시작돼 영업장이 문을 열었지만, 지금도 한쪽에선 내부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만큼 이곳에 입점하려는 업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패션브랜드 구찌 프라다와 자동차 람보르기니 등 80여 명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이곳은 철저히 멤버십으로 운영된다. 멤버십이 없으면 상품 구매는 물론, 명품관 입장도 불가능하다.
한번 가입하면 가족 전체가 사용할 수 있으나, 할인이나 적립은 제공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모스크바의 억만장자들은 엄청난 가입비를 지불하고 이곳을 드나든다.
오일머니가 고요했던 동토 러시아를 소비의 천국으로 바꿔놓고 있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러시아의 억만장자 수는 2002년 7명에서 2007년 53명으로 늘었다.
그 중 모스크바 일대에는 전세계 도시 중 가장 많은 24명의 억만장자가 몰려 있다. 백만장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럭셔리 빌리지는 오일머니의 수혜를 입고 1990년대 말부터 부상한 신흥갑부 ‘노브이 루스키’들이 은밀히 명품 소비욕을 배출하는 통로인 셈이다.
최상류층뿐 아니다. 시베리아산 기름냄새는 중산층의 생활공간인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종로에 해당하는 크렘린궁 맞은편 뜨베르 거리 주차장에는 고급승용차의 대명사인 벤츠로 장사진을 이룬다.
교통 체증이 서울보다 심각할 정도로 차가 많지만, ‘라다’나 ‘볼가’같은 러시아산 차는 가끔 택시로나 구경할 수 있을 뿐 외제차가 대부분이다.
건축 붐도 오일머니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모스크바 시내 어딜 가나 도로확장 공사와 재건축이 진행 중이다. 특히 호텔과 쇼핑센터 건축공사가 많다. 소비에트 시절 최고급 호텔로 유명했던 크렘린궁 옆 모스크바 호텔도 재건축 중이며, 연말까지 10개의 대형 쇼핑몰이 모스크바 시내에 들어설 예정이다.
러시아인들의 여가문화도 달라졌다. 중산층의 월평균 소득은 1,000달러(US) 정도지만, 루블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휴가 때 해외에 나가 명품 하나씩 사오는 것이 일상화했다. ‘굼(GUM)’이나 ‘쭘(TsUM)’과 같은 백화점 근처는 쇼핑객들로 종일 차가 막힌다. 카지노 업계도 성황이다.
모스크바 시내에만 1,000여 개의 카지노가 24시간 네온사인을 번쩍거리며 성업 중이다. 시 당국은 최근 카지노 특별구를 만든다는 대책까지 내놓았다.
최근 5년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0%에 이르고 올해 외환보유액 3위 국가로 뛰어오를 정도로 잠재소비력이 엄청나다 보니 러시아 시장을 잡기 위한 다국적 업체들의 경쟁도 활발하다.
요즘 모스크바 시내에 새로 들어서는 유통매장은 100% 외국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진출한 스웨덴계 가구전문업체 ‘이케아’(IKEA)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케아는 중산층을 위한 복합쇼핑몰 ‘메가’를 함께 만들었는데, 현재 러시아에 8개(모스크바 3개 포함) 매장을 오픈했다.
모스크바 남쪽 쪼꼴리스타니아점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러시아 인구의 3분의 1가량인 5,7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러시아를 집중 공략하고 있는 자동차업체 다임러크라이슬러의 경우 6월 한달간 매출이 작년 동기대비 85%나 급증했다.
2일 모스크바 시내에 문을 연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러시아는 넘치는 오일머니 탓에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으나 소비재 등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다국적 업체들의 러시아 진출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스크바=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