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당하면 합당한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혹시나’하는 보험 가입자들의 이런 의구심에 대한 진실은 ‘역시나’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 블룸버그 마켓 매거진 9월호에 따르면 손해보험사들은 그 동안 ▦보상액 산정 프로그램의 조작 ▦사고 위험 지역에 대한 부당한 보험료 인상 ▦보험 분쟁 발생시 고의적 해결 지연 등을 통해 고객을 속이고, 등치고, 우롱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잡지가 인용한 사례는 주로 미국이지만, 사정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손보사들이 수익을 늘리기 위해 보다 체계적으로 고객을 ‘등치는 방법’을 갖추기 시작한 시점은 1989년 허리케인 ‘휴고’가 미국 북서부를 휩쓸어 약 42억 달러의 보험금 청구가 발생한 다음부터다.
이 때 만만찮은 경영난을 겪은 미국 제2의 주택보험사인 ‘올스테이트’사는 세계 최대의 컨설팅사인 ‘맥킨지’에 수익성 개선 방안을 요청했다. 맥킨지는 이 때 주로 보험금 지급액을 줄여 수익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둔 1만3,000여쪽의 보고서를 냈고, 이 보고서는 ‘파머스 그룹’ 등 다른 보험사에게도 채택됐다.
보고서 중 ‘구원의 손, 아니면 권투장갑’이란 부분을 보면 맥킨지는 보험사에게 “고객들로부터 보험금 지급 요청이 발생하면 일단 최저 금액을 제시하라”고 권고한다. 이 때 고객이 제시액을 순순히 받아들이면 보험사는 ‘구원의 손길’로 친절하게 고객을 대한다. 반면, 이의를 제기하면 “고객과 싸우라”는 내용이다. 최저금액은 통상 약관 대비 30~60% 정도이다.
일단 고객과 분쟁이 발생할 경우, ‘뭉기적거리기 전략’도 제시됐다. 이의를 제기한 고객이 제풀에 지치도록 해결을 최대한 늦추고, 소송 진행도 여러 이슈별로 나눠 최대한 지연ㆍ방해한다는 것이다. 보험금 지급시기를 늦출수록 보험사는 보유자산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도 덤으로 얻게 된다.
보험금을 깎는 것 외에 위험지역의 보험료를 올리는 방법도 쓰였다. 예를 들면 허리케인 피해가 잦은 걸프 코스트, 롱아일랜드, 뉴욕 등에 대해선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아예 손해보험을 받지 않기도 했다. 물론, 사고 위험이 낮은 지역에 대한 보험료 인하는 없었다.
사고가 나서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 직원들은 컴퓨터상의 보상액 산정 프로그램을 이용해 ‘합리적인 보험금 수령액’을 고객에게 제시한다. 하지만 손해율을 비롯해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이 프로그램 자체도 보험사 구미에 맞게 조작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식의 ‘경영합리화’ 결과 올스테이트사의 연간이익은 96년 20억8,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49억9,000만 달러로 140%가 급증했다. 반면, 전체 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급액 비율은 96년 79%에서 지난해 58%로 줄었다. 손보업계 전체도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49%가 급신장한 730억 달러의 순이익을 누린 반면, 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급액 비율은 96년 64%이던 것이 지난해엔 55%로 줄었다.
뉴욕=장인철 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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