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의 한림대 의대 신형철 교수 연구실에는 뇌 수술을 받은 요크셔테리어 ‘졸리’가 사람과 컴퓨터 게임을 한다. 사람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낚시터에 사는 괴물 물고기가 화면의 한가운데로 오도록 마우스를 끌어당긴다.
물고기가 정중앙에 오면 이를 낚을 수 있고, 게임에서 이긴다. 졸리는 반대로 물고기가 중앙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이긴다.
■ 생각으로 컴퓨터 게임 하는 개
졸리에게는 모니터도, 마우스도, 조이스틱도 없다. 졸리는 오로지 생각만으로(!) 컴퓨터 속 물고기를 움직인다. 졸리는 소리를 들어서 물고기가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고, 졸리의 뇌에 심어진 전극이 졸리의 생각 즉 뇌 신경세포의 활성을 감지해, 연결된 컴퓨터로 신호를 보내면, 그에 따라 물고기 위치가 제어된다.
물론 졸리가 지능을 향상시키는 비밀스러운 수술을 받은 것은 아니다. 개가 머리 속으로 “꼭 이겨야지”라고 생각하며 게임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해진 보상(음식이나 물 등)을 받기 위해 학습한 결과, 물고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사람과 졸리에 대해 게임 난이도 차이는 있지만 졸리는 종종 사람을 이긴다.
신형철 교수는 이처럼 생각만으로 기계와 대화하고 제어하는 ‘대뇌 업그레이드’를 연구한다. ‘뇌-기계 접속(Brain-Machine InterfaceㆍBMI)’ ‘뇌-컴퓨터 접속(Brain-Computer InterfaceㆍBCI)’이라고 불리는, 뇌와 기계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려는 연구다. 아직은 동물에 적용하고 있지만 궁극적 목표는 물론 사람이다.
사람의 뇌와 컴퓨터가 융합해 과거에 불가능하던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을 신 교수는 “21세기 인간의 진화”라고 평가한다. 머리에 전극을 심고, 자리에 누워 그 자리에서 TV를 켜고, 오븐을 돌리고, 메일을 체크한다…. 끔찍한 미래일까, 아니면 진화의 한 방편일까?
■ '컴퓨터 뇌 영역'을 만들어라
BMI 기술이 먼저 적용될 대상은 사고나 장애로 운동능력을 상실한 이들에게 꿈 같은 재활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팔 다리를 잃었거나, 척수가 끊긴 경우 뇌 운동피질의 신경세포들이 근육에 전달하는 신호를 컴퓨터에 대신 전달하고 이를 통해 의수나 의족 등을 움직이도록 한다.
신 교수의 연구는 운동영역이 손상됐을 경우 다른 뇌를 사용해 컴퓨터를 제어하도록 하는 연구를 한다. 이른바 ‘뇌의 재활용’이다. 뇌는 영역별 기능이 대강 정해져 있지만 이와 상관없이 어떤 신경세포라도 기계를 제어하도록 훈련할 수 있다.
개 실험에 앞서 수행했던 쥐 실험에서 신 교수는 쥐의 뇌에서 주요 운동피질을 파괴한 뒤 수염 감각을 인지하는 체감각피질에, 서울대 초미세생체전자연구센터(소장 김성준 교수)와 함께 개발한 전극을 심었다.
쥐의 체감각피질의 신경세포가 활성되면 전극을 통해 신호가 컴퓨터로 옮겨져 쥐 앞에 세로로 놓인 원반을 좌우로 돌릴 수 있도록 했다.
원반은 쥐와 물병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데 원반에는 약 30도쯤 갈라진 틈새가 있어서 잘만 돌리면 틈새로 물을 마실 수 있다. 이틀동안 물을 못 마셔 목이 타는 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만으로 원반 돌리는 방법을 터득한다.
이처럼 컴퓨터를 제어하는 동물은 사람에게 BMI 기술을 적용하기 앞서 장애인이나 독거 노인을 돕는 특별한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 신 교수는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제어하고 주인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슈퍼 개’를 도우미로 두는 셈”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신 교수는 졸리가 물고기를 움직이듯 커서를 움직여 간단한 의사를 표현하게끔 훈련했다.
모니터 위치를 가로 세로 3칸으로 나눠 왼쪽 줄은 주어, 가운데 줄은 동사, 오른쪽 줄은 목적어를 두고, 차례로 커서를 움직이면 “나는 물을 먹고싶다”와 같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컴퓨터를 통한 개와 사람의 대화가 정말 가능해지는 것이다.
■ 근적외선을 통한 뇌-컴퓨터의 통신
하지만 BMI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두개골을 열고 전극을 이식해야 한다는 점이 큰 난관이다.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렇고, 사람을 돕는 개라 하더라도 머리 위로 삐죽 솟아오른 전극을 심고, 면역반응이 있을 때마다 전극을 바꿔 심는 일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뇌파는 두피에 센서를 붙여서 감지할 수 있지만 제어하기가 어려워 아주 단순한 기능밖에는 감당하지 못한다.
때문에 신 교수와 연세대 의대 의용공학부 김법민 교수는 두개골을 열지 않고 외부에서 뇌의 신호를 포착해 컴퓨터에 전달할 수 있는 근적외선 분광기를 연구하고 있다.
파장이 800㎚ 정도인 근적외선을 머리에 쪼이면 뼈?꿰뚫는 이 빛은 뇌 혈관 속의 산소량을 이용해 어느 부위의 신경세포가 활성됐는지를 알 수 있다.
근적외선 분광기는 이 원리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처럼 영상진단장비로 먼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특정 영역의 뇌 신경세포가 활성될 때 이 신호를 컴퓨터에 입력 신호로 전달하도록 하면 뇌 수술을 하지 않아도 BMI가 가능하다.
김법민 교수는 “근적외선 분광기는 분해능이 1㎝정도로 fMRI만큼 정밀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거대하고 비싼 장비나, 전극을 심는 절개 수술이 전혀 필요 없어 장점이 크다.
근적외선으로 낚시 게임 정도의 제어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졸리는 전선을 줄줄이 달지 않고 목걸이나 머리띠로 근적외선 장비를 휴대할 수 있어 가령 전신마비 환자의 전동 휠체어를 밀면서 함께 외출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 인간을 업그레이드하다
신 교수의 연구는 뇌 속에 언어나 운동을 담당하는 중추가 있듯 컴퓨터를 지시하는 ‘컴퓨터 중추’를 만드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BMI는 두뇌를 기능적으로 확장하고,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이 된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장애인이나 환자의 뇌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면 재활이 되고, 정상인의 뇌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면 슈퍼맨이 되겠죠”라고 말한다.
영화 <가타카> 에서처럼 우수한 형질만 갖도록 유전자조작을 통해서, 또는 기계를 제어하는 ‘확장된 뇌’를 가짐으로써 인간은 이렇게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가타카>
그렇다면 BMI는 자의식의 혼란이나 계급적 불평등과 같은 다분히 논쟁적인 과학 기술인 셈이다. “윤리적 논란은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술은 나오게 마련이죠.”
김희원 기자 hee@hk.co.kr
■ 뇌 전극이식 연구 어디까지
소설 '뇌'의 주인공처럼 美 전신마비 환자에게 이식 16가지 움직임 가능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 의 주인공 마르탱은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조절,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지만 방대한 외부 지식을 습득하고 소통한다. 현실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성과가 나오고 있다. 뇌>
지난해 7월 <네이처> 표지에 소개된 브레인게이트 이식 실험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5년 전 사고로 척수가 잘려 전신이 마비된 20대 매튜 네이글은 브라운대 뇌과학자 존 도나휴(사이버키네틱스 뉴로테크놀로지 시스템스 설립자) 교수가 개발한 100개 전극이 달린 칩인 브레인게이트를 뇌 속 운동피질에 이식했다. 네이처>
네이글은 이후 그저 “움직이겠다”는 생각만으로 허리를 굽히거나 의수를 움직이는 등 16가지 움직임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연구는 원래 사람이 하던 대로 “움직이겠다”는 생각만으로 의수나 의족 등을 제어하려는 것이다. 이 경우 신형철 교수의 접근과는 달리 별도의 훈련 없이 그저 생각만으로 일상적 움직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뇌의 어떤 신경세포가 몸통의 어떤 근육에 명령을 하달하는지 그 복잡한 정보망을 파악하는 일은 방대하고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듀크대 미구엘 니콜라스 교수 같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
영장류를 실험대상으로 해서 전극을 심고 1,000개나 되는 뇌 신경세포의 활성을 감지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복잡한 운동을 할 때 각각 어떤 신경세포들이 활성하는지(즉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 알아내고자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미세한 전극을 개발하고 동물에 수술하는 공학자와 생물학자뿐 아니라 전극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는 수학자들과 복잡계 연구자들의 공동연구가 필수다.
신형철 교수는 “현재까지는 팔꿈치와 손목을 움직이는 정도까지 뇌 신경세포의 정보 해독이 이루어졌다”며 “손가락이나 입가와 같은 복잡한 근육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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