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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 새 길을 찾는다] <1> 고립된 한국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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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 새 길을 찾는다] <1> 고립된 한국 관광

입력
2007.09.0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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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제살 깎아먹기 가격 경쟁으로 저가 패키지 상품이 난무하는 한국 관광의 현실에서 외국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많은 외국관광객들은 저가 상품이 전해주는 '싸구려' 한국의 모습에 실망을 하고 떠난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중국인 여대생 리우홍예(劉紅葉ㆍ22), 수링팡(蘇令方ㆍ22) 두 학생이 지난달 23일부터 4박5일간 패키지상품을 통해 한국을 다녀간 뒤 보내준 여행 감상기를 소개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관광의 모습이다.

한국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소원을 드디어 이루게 됐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값싼 한국 패키지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 1인당 4,980위안(62만원)으로 4박5일에 서울, 제주, 부산 등 유명한 곳을 다 다닐 수 있고 시속 300km를 달린다는 KTX도 체험하는 상품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여행사에 여행비와 신청 서류를 내고는 한국 갈 날만 기다렸다. 꿈속으로 그려왔던 '김치와 드라마'의 나라, 한국에 가는구나.

출발 이틀 전 늦은 저녁에 여행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비자는 나왔지만 우리 둘이 아직 대학생이고 가족과 같이 떠나지 않아 불법체류 가능성이 높다며 5만위안(630만원)씩의 보증금을 내라는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돈을 마련해야 할지 몰랐다. 여행사측에 몇 번 전화해 보증금을 깎아달라고 했고, 친구나 친척들을 찾아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돈을 맞출 수 있었다. 이웃나라 한국 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마침내 출발하는 날. 공항에서 만난 우리 패키지 팀은 모두 31명. 모두들 상기된 얼굴로 한국 여행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오후 2시쯤 한국 땅 부산에 도착했다.

첫 관광지는 용두산공원. 한국여행에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몸이 피곤했다. 날씨도 덥고 기운도 없는데 뙈약볕에 굳이 이 작은 공원에 왜 데리고 온 걸까. 가이드는 이순신 장군 동상 이야기를 했지만 일행들은 관심이 없는 눈치다. 결국 다들 공원 밑에 있는 국제상가에 내려가 쇼핑을 했다.

쇼핑이 끝나고 호텔에 가서 체크인 한 후 뷔페로 차려진 저녁을 먹으니 하루 일정이 다 갔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게 광안대교, 자갈치시장, 해운대 등인데 이런 곳엔 가보지도 못하고 부산여행이 끝이 났다.

이튿날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난 후 관광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달려갔다. KTX는 기대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우린 KTX로 서울까지 올라가지 않고 대전에서 내려 관광버스로 갈아탔다.

계획대로라면 에버랜드를 들렸다가 서울로 가야 하는데, 버스는 바로 서울로 향했다. 가이드가 협의도 없이 "에버랜드 보다는 차라리 서울의 롯데월드가 낫다"며 일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바로 갈 거면 KTX로 계속 갈 일이지 왜 시간을 낭비한 걸까.

오후에 시작된 서울관광.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보니 서울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없어서 정말 아쉬웠다. 원래 일정은 서울에서 1박2일 머무는 건데, 가이드가 다음날 판문점 자비부담여행(옵션투어)를 꼭 해야 한다며 스케줄을 조정했다.

간다던 롯데월드는커녕 불과 몇 시간 안에 경복궁과 청와대, 명동을 돌아본 후 워커힐 호텔로 쇼를 보러 갔다. 워커힐쇼는 자비 부담이라 일행 중 절반만 신청해 나머지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한강 야경 투어가 있으면 좋았을 것을.

숙소는 인천 인근의 어느 온천호텔이다. 밤 12시께 도착해 지친 몸을 뉘었다. 버스만 타고 다녔지 제대로 보질 못해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단체의 다른 관광객들도 대부분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3일째 날 일정은 갑자기 만들어진 판문점 여행. 350위안(4만3,000원)씩 내라고 했다. 한국의 분단 현실을 볼 수 있어서 나쁘진 않았지만 예정에 없이 갑자기 가자고 했던 여행이라 기분은 별로다. 우리는 차라리 서울에서 자유로이 돌아다녔으면 했는데. 책에서 보았던 대학로, 신촌, 코엑스, 남산 등을 언제 또 와서 걸어보겠는가.

오후는 최악이었다. 내내 쇼핑만 이어졌다. 인삼가게, 전자제품가게, 자수정가게를 돌았다. 그렇다고 일행들이 물건을 많이 산 것도 아니다. 어른들이 인삼을 조금 샀고, 신혼부부 한 쌍이 자수정 목걸이 하나 샀을 뿐이다. 돈 없는 학생 신분인 우리들에겐 너무 비싼 물건들이라 의미없는 시간이었다.

저녁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다음날 오전엔 용두암 성산일출봉 민속촌 등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정방폭포 서복전시관 신비의 도로 등을 구경했다.

다 좋았는데 서복전시관은 별로였다. 중국인들을 위한 전시관이라고 하는데 실제 아무것도 볼 게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 제주만 있는 아름다운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닷가의 경치에 빠져들고 싶었다.

다음날은 귀국. 아침에 일어나 바로 공항으로 갔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4박5일의 한국여행은 커다란 아쉬움을 남기고 그렇게 맥없이 끝났다.

■ 정명순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장

"간판만 호텔이라고 내건 허름한 숙소, 싸구려 음식, 시간에 쫓겨 수박 겉핥기로 보고 넘어가는 둘러보기식 관광에다가 원치 않는 쇼핑.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세요. 이런 경험을 한 관광객들이 다시 오려고 하겠습니까?"

관광의 최일선에 서있는 통역안내사(가이드)가 털어놓는 한국의 관광 자화상이다. 정명순(57)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 회장은 "이런 현실에서 적절한 대책 없이는 한국 관광의 앞날이 절대 밝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가 관광 상품 때문이라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현지 여행사들은 한국 관광업체가 내놓은 가격 중 가장 싼 견적서를 들먹이며 덤핑을 조장하고, 한국 여행사는 실적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여행객을 떠안는다.

여행사는 이렇게 발생한 적자를 안내사(가이드)에게 다시 떠넘기고, 안내사는 옵션 여행상품을 팔거나 쇼핑을 유도해 그 구매 수수료로 적자를 메워야만 한다.

관광객 한 팀에 차량 한 대와 안내사 한 명이 붙는 것이 보통인데, 일부에서는 4,5팀, 많게는 8,9팀을 묶어 차량 한 대에 안내사 한 명을 배정해 원가를 낮추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관광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된 여행을 하려면 추가로 돈을 내야 하고, 쇼핑 위주로 짜인 여행일정이 만족스러울 리 만무하다. 불만을 안고 귀국한 여행객들이 주위에 한국 관광을 권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현자(48) 통역안내사는 "물가가 비싸 한국 관광에 대해 불만이 많다"면서 "게다가 저가 패키지의 경우 몇 천원 하는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무료인 곳만 찾아 다녀야 하는 형편이니 좋은 표정으로 돌아가는 외국 관광객은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안내사일을 30년간 해왔다는 구모(52)씨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10년 전 여행업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여행사가 난립해 결국 제살 깎아먹기로 함량 미달의 관광상품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관광객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 걱정스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안내사의 자질도 심각한 문제다.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에 따르면 돈을 받고 통역안내사 일을 하는 사람은 줄잡아 5,000명인데 이 중 자격증을 갖고 일을 하는 사람은 3,000명에 불과하다. 2,000명이 검증되지 않은 인력이라는 얘기다.

정 회장은 "정부가 2003년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의무화 제도를 폐지하면서 일어난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의무화 제도를 부활시키고, 기존 자격자에 대한 보수교육도 철저히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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