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100년을 집창촌을 통해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이 얼마나 험한 세상을 살아왔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분들이 식민지, 전쟁과 그 폐허 속에 살아남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많은 것들도요.”
오랫동안 존재해왔지만 공공연히 얘기하지 못했던 전국 집창촌에 대한 기록인 <유곽의 역사> (페이퍼로드 발행)의 저자 홍성철(37ㆍ사진)씨. 유곽의>
이 책은 19세기 개항지의 일본식 유곽부터 현재의 티켓다방, 서울과 지방의 집창촌의 구조, 성매매여성수급방식, 집창촌의 명칭과 유래, 당국의 대책 등 집창촌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담은 박물지(博物誌)형식이다.
증언할 사람도 문서자료도 거의 남아있지 않고 대놓고 말하기에도 꺼림칙한 이 소재에 홍씨가 관심을 가진 것은 4년 전 경찰청을 출입하던 기자시절이다.
속칭 ‘미아리 텍사스’에서 ‘청소년 성매매와의 전쟁’을 지휘했던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 서장이 5페이지짜리 서류를 보여줬는데 그곳에는 전국 35곳 집창촌의 위치와 윤락업소 개수, 윤락여성수, 특징 등이 요약돼 있었다.
집창촌 르포를 썼던 기억과 함께 집창촌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이듬해부터 국립도서관, 구청자료실 등에서 자료를 모았다.
주변 사람들은 미혼인 그에게 “그런 책 쓰다간 평생 결혼 못한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신문사를 그만둔 지난해에는 3개월간 군산의 개복동과 대명동, 전주 선비촌과 선화촌, 목포 사쿠라마치 등 전국 30여곳의 집창촌을 발로 누볐다.
가슴 아픈 광경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춘천에서는 60대 후반의 한 할아버지가 손녀를 안고 집창촌 쇼윈도를 오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성매매 여성인 딸은 쇼윈도 안에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태백에서는 교복을 입은 포주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면서 집에 들어와 밥을 먹고 다시 자율학습을 하러 학교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는 “집창촌의 비극적인 역사와 현실을 발로 뛰며 확인했지만 솔직히 그것을 언제 어떤 식으로 폐지해야 할지는 뚜렷한 결론이 서지않는다” 고 말했다.
다만 집창촌과 성매매 문제는 윤리의 관점보다는 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성 빈곤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성매매의 선악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논의라는 것이다.
현재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저널리즘과정을 밟고 있는 홍씨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보는 집창촌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책을 썼다”며 “지적도나 건물대장, 과거 집주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한 보다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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