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의 선거운동 캠프로 가기 위해 장관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힌 이치범(53) 환경부장관의 처신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공식적인 개각이 아닌 상황에서 부처 수장이 정치권 진입을 위해 돌연 사임을 발표한 것은 국가정책 수행에 막대한 차질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직 장관이 곧바로 대선 캠프로 이동한 것은 전례가 없어 대선을 앞두고 공직사회의 동요가 우려된다.
이 장관은 31일 갑작스럽게 기자간담회를 자청,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대통령 후보인 이해찬 총리를 돕기 위해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차기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장관직을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환경부는 혼란에 빠졌다. 차관을 비롯해 직원들은 장관의 사임발표 직전까지도 이를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은 그간 추진돼 온 주요 환경정책은 차치하고라도 9월3일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어떻게 치러야 하나 당장 고민해야 할 판이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이 장관이 환경전문가로 환경정책을 잘 이끌어 직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는데 당혹스럽다”며 “차라리 지난번 개각 때 자리이동을 했으면 모양새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에서의 비판은 더욱 매섭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장관이 민감한 시기에 본인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 그만두면 업무공백을 낳고 공직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위정희 시민입법국장도 “참여정부는 새만금, 천성산 터널 등 각종 환경정책에서 사회적 갈등해결을 위한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못했다”며 “정부가 벌려놓은 각종 일들을 끝까지 마무리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국가정책보다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더 중시했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이경율 환경실천연합회장은 “애초 정치적 포부가 있었으면 장관직을 맡지 않았어야 한다”며 “결국 장관직은 ‘경력관리용’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분야 다른 인사는 특히 “이 장관이 ‘이해찬 전 총리가 대선출마를 결심했을 때부터 어떻게 도울까 많이 생각했다’고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 장관은 최근 몇 달간 장관 업무를 실질적으로 방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장관이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현직 장관으로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경부대운하 공약을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한 것도 부적절하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국가정책을 수행해야 하는 국가기관의 지위를 흔들었다는 것이다.
환경부 한 직원은 “경부대운하가 환경적 측면에서 긍정적이지 않다는 게 많은 환경부 직원들의 생각”이라며 “이 장관의 비판이 앞으로 환경부 입장을 펼치는 데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천 관가의 한 고위공직자는 “노골적으로 차기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장관직을 그만두겠다고 한 사례는 일찍이 없다”이라며 “캠프로 옮겨가는 장ㆍ차관이 나올수록 그에 따른 정책수행 단절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성시영기자 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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