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휴가를 써라. 미리 얘기할 것도 없다. 목요일에 일을 마치고 주말을 3일간 쉬어도 된다. 두 주를 붙여서 장기휴가를 써도 상관없다. 상사가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는다’
평범한 ‘9 to 5’ 직장인들에겐 꿈 같은 얘기다. 하지만 이런 회사가 실제 있다. IBM이다.
IMB은 성과 중심의 업무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점진적으로 시기에 관계 없이 직원들 스스로 짜는 휴가제도를 확대해 왔다. IBM의 사업성격이 엔지니어링 및 제조업을 넘어 점차 컨설팅 같은 서비스 쪽으로 가면서 전통적인 ‘8시간 고정근무’ 시스템에 변화가 일어난 시기와 일치한다.
그럼 이런 식의 휴가 시스템으로 IBM은 직원들에게 천국 같은 직장이 됐을까. 뉴욕타임스는 31일 “그렇지 만은 않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IBM 직원들이 ‘맘대로 휴가’를 갖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직속상관과 업무를 제 때 마친다는 비공식 ‘협약’을 맺는 것이다. 업무가 유기적으로 진전될 수 있도록 자신의 휴가계획을 전자캘린더에 공시해서 모든 직원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필요시 언제든 접촉이 될 수 있도록 연락망을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맘대로 휴가’를 가더라도 직원들은 사실상 컴퓨터 통신망과 휴대전화, 화상단말기 등으로 직속상사의 통신망을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의 휴가계획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부담까지 감수해야 한다.
직원인 샤리 치아라는 “휴가를 가도 항상 이메일과 보이스메일 메시지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며 “업무일정에 맞춰 달라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 휴가를 단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업무 스케줄도 스스로 짜고, 휴가도 마음대로 가며, 고정된 사무실에 앉아 있을 필요조차 없는 이 같은 성과 중심의 업무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까지 허물어뜨릴 수 밖에 없다.
상당수 IBM 직원들은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가 흐트러지면 직원들로서는 점점 더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특히 어디에 있든 상사와 항상 접촉해야 하는 상황에선 건강문제까지 발생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IBM 판매부문에서 34년간 근무한 뒤 퇴직한 프랜시스 슈나이더는 이런 현실에 대해 “근무하는 동안 단 한 해도 배정 받은 휴가 일수를 채운 적이 없다”며 “‘맘대로 휴가’라는 얘기와 달리 IBM은 온통 ‘워커홀릭’으로 가득찬 조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장인철 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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