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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알 권리

입력
2007.08.3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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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깊이 빠져 들던 1971년 6월,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전 개입 전 과정을 담은 국방부 극비문서를 특종 보도했다. 국방부 산하연구소 연구원 다니엘 엘즈버그가 전쟁의 실상을 폭로하기 위해 문서를 유출한 것이다. 라이벌 워싱턴포스트도 엘즈버그와 접촉해 더 상세한 내막을 추가 폭로해 반전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국방부는 보도금지 명령을 법원에 신청했지만, 엎치락뒤치락 끝에 연방대법원이 최종 기각함으로써 언론자유에 기념비적 판례를 남겼다. 자유롭게 정보를 입수하고 보도할 수 있는 언론자유가 보장되어야, 시민은 국가의 권력 남용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 취지였다.

▦언론자유를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알 권리(right to know)’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1945년 미국 AP통신사의 간부 켄트 쿠퍼였다. 그는 “시민에게는 완전하고 정확하게 제시되는 뉴스를 접할 권리가 있으며,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에 봉사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의 수탁자 또는 대변인이라는 논리가 여기서 나왔다. 그렇지만 알 권리는 실정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개념이 아니다. 미국이 그렇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알 권리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언론자유와 알 권리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인식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된다.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려면 의견 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취득할 수 있는 권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취지에서 1989년 “알 권리는 표현의 자유에 당연히 내포되는 헌법적 기본권”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물론 여기서 알 권리의 주체는 언론이 아니라 국민이다. 언론이 알 권리의 위임자로서 ‘알릴 권리’를 주장하려면 완전하고 정확한 뉴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언론통제라는 거센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전국 신문 방송 통신의 편집ㆍ보도국장이 긴급회의를 열어 결의문을 채택하는 유례없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부기관 취재를 봉쇄하고, 브리핑만 받아 적게 하는 정책을 선진화 방안이라고 내놓는 후안무치함이 놀랍다.

공개된 접견실에서만 공무원을 만날 경우 엘즈버그 같은 솔직한 내부 고발이 가능하겠는가. 시대착오적 정책의 철회를 주장하며, 언론도 국민의 알 권리 대변자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반성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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