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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언론의 길, 대통령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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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언론의 길, 대통령의 길

입력
2007.08.3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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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 중인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언론계의 거센 반발 속에 국회의 5당 원내대표들도 국민의 알 권리 침해 우려에 의견을 같이하고, 국회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범여권 정당인 민주신당과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 5당 원내대표들은 "브리핑 룸 통폐합 조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I) 세계신문협회(WAN) 세계편집인협회(WEF) 국제기자연맹(IFJ) 등 국제언론기구들도 일제히 유감을 표시했다.

그들은 공무원들의 기자 접촉 제한과 상부 보고 의무화 등은 국민에게 정보를 알려야 하는 언론의 역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취재원 보호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기자실에 대못질을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전세계 민주국가의 기자들을 경악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 승산없는 싸움에 임기 말 낭비

국민들도 머리를 흔들고 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는 시기에, 임기가 6개월밖에 안 남은 대통령이 왜 이런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라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지금 이런 문제로 싸울 만큼 한가하냐,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로 끝까지 알 수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내외 어디를 둘러봐도 칭찬을 듣기는 어렵다. 노 대통령과 정부는 전혀 승산 없는 싸움, 불필요한 싸움에 매달려 임기 말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기자실에 아무리 대못질을 한들 다음 정권에 가면 대못을 뽑고 원상회복을 할 게 뻔한데 왜 국민세금을 수 십억씩 써 가며 기자실 통페합 공사를 강행하는 건가. 한나라당은 물론 범여권 정당도 반대하고 있는데, 임기 말의 대통령이 무슨 명분으로 다음 정권에서의 취재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건가.

기자실을 정부 각 부처에 두느냐 통합하느냐는 문제는 '선진화'도 '후진화'도 아닌 필요의 문제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각 부처 안에 기자실을 유지했던 이유는 그것이 우리 현실에서 필요했기 때문이지 후진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각 부처 안에, 공무원들 속에 기자실이 존재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서울 광화문과 과천의 두 정부종합청사에 통합브리핑 센터를 새로 만들어 13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기자들의 외면으로 공무원들이 동원돼 자리를 채워야 하는 통합브리핑 센터가 '선진화'인가. 기자들의 공무원 접촉 제한으로 국민의 알 권리 침해가 우려되는 마당에 현대적 송고시설을 갖춰 주었으니 '선진화'란 소린가.

대통령에겐 대통령의 길이 있고, 언론에는 언론의 길이 있다. 그 두 개의 길은 서로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선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각기 중요한 길이다. 두 개의 길은 때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때로는 부딪치고, 격려와 비판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한국의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는 유감스럽게도 적대적일 때가 많다. 그렇게 된 책임은 대통령에게도 있고 언론에도 있다. 비판을 항상 비난으로 받아들여 지나치게 반응하는 대통령의 언론관이 악순환을 불렀다.

● 뽑아준 국민 알 권리 존중해야

이번에 나온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역시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적대감에서 나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안에서도 이런 느낌이 지배적일 수 밖에 없다. 국정홍보처나 각 부처들이 쫓기듯 갈팡질팡하며 설익은 방안을 내놓아 혼란을 부추기는 것도 대통령의 의중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대감에서 출발한 정책으로 언론을 '선진화'할 수는 없다. 그 어떤 권력도 언론의 길을 바꿀 수는 없다. 지금은 밀어 부칠 때가 아니라 폭 넓게 의견을 들으며 벌려놓은 일을 수습할 때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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