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프린스 1호점> 이 막을 내렸다. 현재의 문화 지형에서 이 드라마의 성공은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우선 이 드라마는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 작가, PD, 주인공, 열혈 시청자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커피>
또 최근 2년 여 동안 상당 수의 트렌디 드라마가 부진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 프린스> 의 최종회 시청률은 보기 드물게 30%에 육박했다. 커피>
지난 달 MBC 홈페이지의 드라마 '다시 보기'에서 <커피 프린스> 는 거의 절반의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미 9만 건에 달하는 팬/폐인들의 글이 올라와 있다. 가히 최고 인기 트렌디 드라마의 재림이다. 커피>
<커피 프린스> 의 인기몰이는, 작년부터 거세게 밀어닥친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 속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얼마든지 되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커피>
말하자면 <커피 프린스> 는 최근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가 나름대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며 변주와 진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징후이며, 변화하는 대중의 감수성을 읽어낼 수 있게 해주는 구체적 지점이다. 커피>
물론 <커피 프린스> 의 여주인공 은찬은 우리가 트렌디 드라마에서 흔히 보아온 '캔디렐라'의 전형이다. 외롭고 힘들어도 씩씩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결국에는 재벌 가의 '백마 탄 왕자님'과 맺어진다. 커피>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의 상투성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그 선에서 붙들어 맨 채, 새로운 '재현의 정치학(politics of representation)'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드러내는 데에 이 드라마의 미덕이 있다.
이 드라마는 <네 멋대로 해라> 에서 <풀 하우스> , <내 이름은 김삼순> , <연애시대> 로 이어지는 일련의 양질의 트렌디 드라마들이 그러했듯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새로운 버전의 '트렌디 드라마적 상상력' 혹은 '멜로드라마적 상상력(melodramatic imagination)'을 동원해 풀어나간다. 연애시대> 내> 풀> 네>
그 새로운 상상력 혹은 새로운 감수성의 요체는 '쿨'하지만 따뜻한 사랑이다. 구질구질한 것들은 발 붙일 곳이 없으며 사랑의 방식에서, 대화의 방식에서,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 깔끔하고, 순수하고, 풋풋한 것이 일관되게 선호된다.
극중에서 유주는 유산을 하지만 "아이는?"이라고 '구태의연하게' 묻지 않으며 질질 짜지도 않는다. 침대 옆에서 부드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한성과 담담하게 눈빛을 교환하며, 모든 것을 '맥락적으로' 이해한다.
연인에게 귀염을 떨며 어리광을 부리다 못해 앙탈을 부리는 사람은 여자가 아닌 남자 주인공 한결이다. 유주는 한성의 프러포즈에 대해 "네"라며 다소곳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이 무릎을 꿇고 한성에게 멋지게 프러포즈함으로써 대답을 대신 한다. 은찬은 차 안에서, 침대 위에서 한결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적극적인 애정표현과 프러포즈는 더 이상 남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젊은이들 사이의 혼전 성관계나 동거, 임신, 유산, 심지어 동성애의 암시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쿨하게 받아들여진다. 사랑하니까. 진부한 것은 질색이니까.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표상되는 성 정치학, 관계의 정치학은 젊은이들이 이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기성세대와 얼마나 다른지 -혹은 다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이 드라마의 원작이 소설이라는 데서도 부분적으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드라마가 자주 질료로 삼는 소설의 영역에서는 아내가 결혼하고 –박현욱 지음 <아내가 결혼했다> - 세 명의 여자가 한 남자를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국에는 여자끼리 감정적 연대도 형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정도로 –이홍 지음 <걸 프렌즈> - 풍부한 상상력을 이미 보여주지 않았던가. 걸> 아내가>
<커피 프린스> 는 한 여름 무더위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리에게 행복한 느낌이란 어떤 것인지 쿨하게 전해주는 '현실적 판타지'다. 커피>
김영찬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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