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영석(39)씨는 지난 17일 주가가 폭락했을 때 샀던 현대차 주식을 10여일만에 팔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문제로 원ㆍ달러와 원ㆍ엔 환율이 동반 강세를 보여 현대차가 혜택을 입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7만원이던 주가가 6만8,000원까지 빠지자 아무래도 오판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대신 요즘 잘 나가는 삼성중공업 주식을 매입했다. 이씨는 “각 증권사가 앞 다퉈 하반기에는 IT(정보기술업종)와 자동차가 증시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으로 출렁였던 주가지수가 반등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 유망 업종으로 꼽혔던 IT와 자동차 업종은 좀처럼 하락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조선ㆍ철강ㆍ화학 등 대표적인 굴뚝주들은 상반기의 폭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선주인 대우조선해양은 17일 이후 주가 상승률(29일 현재)이 40.75%에 달했고, 철강주인 동국제강도 57.09% 상승했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반등장인데도 오히려 1.75% 하락했고, LG필립스LCD(-4.74%)와 현대차(-2.98%)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대표적 철강주인 포스코는 29일 주가가 55만 4,000원으로 삼성전자(56만 2,000원)를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와 굴뚝주의 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록 시가총액은 아직 삼성전자를 넘볼 수 없는 수준이지만, 주가만 놓고 보면 포스코의 약진은 눈부시다. 삼성전자가 올 초부터 60만원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지만, 포스코는 8개월새 30만원에서 60만원을 넘보는 수준까지 올랐다.
증권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문제가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어 IT와 자동차의 하반기 실적이 안개 속에 빠질 가능성이 크지만 철강ㆍ조선ㆍ화학 등은 중국 경제의 쾌속 행진으로 ‘어닝 서프라이즈’(실적호전)를 이룰 것이라는 데 무게를 뒀다.
대신증권 구희진 리서치센터장은 “IT와 자동차는 선진시장, 특히 북미 수출 비중이 높은 제품들”이라며 “미국의 경기가 심상찮은 만큼 실적 개선폭이 기대 이하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베이징 올림픽과 유로 2008 등 스포츠 이벤트가 많아 IT제품 주문이 늘어야 하는데 아직 주문이 기대 이하”라고 평가했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정보파트장은 “조선ㆍ철강 등은 미리 따놓은 수주가 쌓여 있어 실적 개선이 확실한 반면, IT와 자동차는 실적 전망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굴뚝주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브프라임 문제로 원ㆍ달러와 원ㆍ엔 환율이 강세를 보이면서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서성문 연구원은 “미국의 7월 자동차 판매건수는 전달에 비해 12.4% 줄었을 만큼 경기침체 징조가 나타나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현대차의 미국 내 점유율은 6월 3.4%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가격경쟁력이 생기면서 오히려 실적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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