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헤맸다. 이 어처구니없는 영화를 표현할 단어를 찾으러. 표준국어대사전을 헤집다가 결국은 한 포털사이트 오픈사전에서 적확한 표현을 발견했다. ‘므흣하다’.
배꼽에 낀 땟국의 냄새를 확인하듯, 동물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원초적 쾌감의 완성! 일물일어설을 주창한 플로베르도 무릎을 칠, 이 영화에 정말 ‘딱’인 단어가 아닌가.
쿠엔틴 타란티노, 갓 서른의 나이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이 말썽꾸러기의 머릿속엔 늙은 구렁이가 열두 마리쯤 들어 있다.
그 구렁이는 B급 문화에 대한 찬미로 가득한 영화의 프레임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눈과 귀를 통해 스멀스멀 관객의 두개골 속으로 침투한다. 배배 꼬인 내러티브도 없고 현란한 비주얼도 없지만, 장담컨대 이 ‘하드보일드 유머’에 중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데쓰프루프> 의 배경은 텍사스의 작은 도시 오스틴. 타이틀 자막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징글맞을 정도로 긴 롱테이크로 시덥잖은 잡담을 늘어 놓는 처녀들을 비춘다. 데쓰프루프>
시시콜콜한 대화가 슬슬 따분해질 무렵, 영화의 시선은 농염한 자태로 춤추는 여인의 육감적 엉덩이에 멎는다. 그리고 천천히 꿈틀대며 놀라운 변신을 시작한다. 타란티노는 영화를 쭉 잡아당기다가, 정확히 관객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을 때 그것을 놓아버리는 ‘타이밍’을 안다. 영화의 전반부는 그런 파열의 쾌감이 절정에 달한 곳에서, ‘와장창’ 소리를 내며 터져 버린다.
뜬금없이 화면이 흑백으로 10분쯤 흐른 뒤, 영화는 테네시주 레바논시로 무대를 옮겨 후반전을 시작한다. 전반부에서 처녀들의 사지를 절단낸 음침한 스턴트맨(커트 러셀)이 다시 먹잇감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활달한 네 처녀. 그러나 잘못 골라도 단단히 잘못 골랐다. 달리는 자동차 보닛에 매달리는 ‘놀이’를 즐기는 처녀들은, 말초신경을 얼얼하게 만드는 순도 100% 아날로그 액션을 펼치며 통쾌하게 주객을 뒤집는다.
영화의 매력은 ‘B급’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향한 애정, 그리고 그것을 아날로그 화법으로 엮어내는 타란티노의 솜씨다. 영화에는 동전을 넣어 돌리는 뮤직박스, 70년대 자동차, 페티시즘을 자극하는 치어리더 복장 등 갖가지 B급 잡동사니가 넘쳐난다.
이 영화의 히로인인 조이(조이 벨)도 뒤통수나 등짝밖에 영화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스턴트우먼이었다. 압권은 오락실의 영원한 로망 ‘철권’ 게임을 연상케 하는 무지막지한 엔딩신. 영화가 끝나는 순간, 박수를 치며 폭소를 떠뜨리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9월 6일 개봉. 18세.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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