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빌어 먹을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 영화는 재미있다.) 이 질문은 마치 손안에 새를 쥐고 “이 새가 죽었느냐, 살았느냐” 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지 않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면, 연애가 여반장인 이 시절에 그보다 더 곰팡내 나는 퀴퀴한 시대착오가 어디 있겠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결혼이란 위태로운 벼랑 끝에 지금, 엄정화란 붉은 장미가 피어올라 있다.
무엇보다도 기이하지 않는가? 후기자본주의시대, 대한민국의 결혼이란 제도의 고찰 중심에 늘 엄정화가 있다는 사실은. 엄정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에서 그녀는 멀쩡한 의사 남편을 놔두고 마음이 가는 대학강사인 준영과 대낮에 버젓이 시간제 동거를 했다. <싱글즈> 에서는 ‘그냥’ 동거하던 불알친구 이범수의 아이를 갖자 미혼모의 길을 가기로 당당히 선언한다. 싱글즈> 결혼은>
흔히 그녀를 섹시한 여가수 이미지로 재단하지만, 아니다. 그녀는 결단코 우리시대, 우리 여성들의 욕망의 붉은 장미다.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가 영화화 된다면, 그 주인공 역시 엄정화가 가장 제격일 것이라고 김칫국을 마셔보기도 한다. 아내가>
엄정화의 매력은 그녀가 우리시대 ’탈결혼‘의 매력을 어떤 방식으로든 대리만족 시켜주는 동시에 그녀의 속물근성이 가지고 오는 감정노동의 가중치를 확인시켜 주는 순간 활활 점화된다.
<결혼을 미친 짓이다> 에서 낯선 남자와 처음 만난 날 “택시비보다 여관비가 싸겠네요”라며 여관방으로 직행하다가도, 같이 살 남자 앞에서 조신하게 사과를 깎으며 허벌나게 내숭이란 감정노동을 해야만 하는, 그 사회적 가중치의 괴로움 혹은 가소로움. 결혼을>
그녀의 ‘몸 따로 마음 따로’는 바로 이 사회가 권장하는 결혼이란 그물 안으로 들어갈 수도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는 요즘 여성들의 고난과 타협으로써의 ‘중혼의 욕망’이다. 부자인 남편과 가난한 애인과 동시에 결혼하고 싶은 욕망.
거꾸로 요번 <지금 사랑하는…> 처럼 가난한 남편과 부자 애인과 동시에 연애하고 싶은 욕망 같은 것들. 결코 버릴 수 없는 자본주의 결혼의 비린 맛들. 지금>
그런데 상대적으로 엄정화의 이 이중적인 욕망의 굴곡이 주는 긴장감은 TV란 매체의 보수성곽 안에만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밋밋한 맹물로 변모해 버린다.
아쉽게도 드라마 <칼잡이 오 수정> 에 등장하는 엄정화는 그냥 속물스런 보석세공사일 뿐이다. <지금 사랑하는…> 에서 보이는 남자와 침대에서 맨 몸으로 뒹굴며 거친 언어적 타이틀매치내지 일합을 겨루는 그런 섹시한 당당함이 제대로 표현될 리가 없다. 지금> 칼잡이>
그녀가 <…오 수정>에서 칼고라는 과거의 남자이든 정우탁이라는 허울좋은 재벌이든 간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목을 매며 벌벌 떠는 모습은 영 ‘엄정화스럽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한국영화계가 어렵더라도 엄정화는 하루 속히 스크린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이 연사 목놓아 외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동건이 엄정화에게 “가방 하나 갖다 줘요.
너무 지루하지 않은 걸로” 라고 요구했을 때, 나는 느꼈다. 그 지루하지 않은 가방은 바로 엄정화 자신이라는 것을. 그녀가 다음 번에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시대 욕망을 재현할지. 엄정화, 그 붉은 장미의 속살을 다시 한번 엿보고 싶다.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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