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결혼은 지루해" 욕망의 장미, 엄정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결혼은 지루해" 욕망의 장미, 엄정화

입력
2007.08.30 00:06
0 0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빌어 먹을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 영화는 재미있다.) 이 질문은 마치 손안에 새를 쥐고 “이 새가 죽었느냐, 살았느냐” 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지 않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면, 연애가 여반장인 이 시절에 그보다 더 곰팡내 나는 퀴퀴한 시대착오가 어디 있겠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결혼이란 위태로운 벼랑 끝에 지금, 엄정화란 붉은 장미가 피어올라 있다.

무엇보다도 기이하지 않는가? 후기자본주의시대, 대한민국의 결혼이란 제도의 고찰 중심에 늘 엄정화가 있다는 사실은. 엄정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에서 그녀는 멀쩡한 의사 남편을 놔두고 마음이 가는 대학강사인 준영과 대낮에 버젓이 시간제 동거를 했다. <싱글즈> 에서는 ‘그냥’ 동거하던 불알친구 이범수의 아이를 갖자 미혼모의 길을 가기로 당당히 선언한다.

흔히 그녀를 섹시한 여가수 이미지로 재단하지만, 아니다. 그녀는 결단코 우리시대, 우리 여성들의 욕망의 붉은 장미다.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가 영화화 된다면, 그 주인공 역시 엄정화가 가장 제격일 것이라고 김칫국을 마셔보기도 한다.

엄정화의 매력은 그녀가 우리시대 ’탈결혼‘의 매력을 어떤 방식으로든 대리만족 시켜주는 동시에 그녀의 속물근성이 가지고 오는 감정노동의 가중치를 확인시켜 주는 순간 활활 점화된다.

<결혼을 미친 짓이다> 에서 낯선 남자와 처음 만난 날 “택시비보다 여관비가 싸겠네요”라며 여관방으로 직행하다가도, 같이 살 남자 앞에서 조신하게 사과를 깎으며 허벌나게 내숭이란 감정노동을 해야만 하는, 그 사회적 가중치의 괴로움 혹은 가소로움.

그녀의 ‘몸 따로 마음 따로’는 바로 이 사회가 권장하는 결혼이란 그물 안으로 들어갈 수도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는 요즘 여성들의 고난과 타협으로써의 ‘중혼의 욕망’이다. 부자인 남편과 가난한 애인과 동시에 결혼하고 싶은 욕망.

거꾸로 요번 <지금 사랑하는…> 처럼 가난한 남편과 부자 애인과 동시에 연애하고 싶은 욕망 같은 것들. 결코 버릴 수 없는 자본주의 결혼의 비린 맛들.

그런데 상대적으로 엄정화의 이 이중적인 욕망의 굴곡이 주는 긴장감은 TV란 매체의 보수성곽 안에만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밋밋한 맹물로 변모해 버린다.

아쉽게도 드라마 <칼잡이 오 수정> 에 등장하는 엄정화는 그냥 속물스런 보석세공사일 뿐이다. <지금 사랑하는…> 에서 보이는 남자와 침대에서 맨 몸으로 뒹굴며 거친 언어적 타이틀매치내지 일합을 겨루는 그런 섹시한 당당함이 제대로 표현될 리가 없다.

그녀가 <…오 수정>에서 칼고라는 과거의 남자이든 정우탁이라는 허울좋은 재벌이든 간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목을 매며 벌벌 떠는 모습은 영 ‘엄정화스럽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한국영화계가 어렵더라도 엄정화는 하루 속히 스크린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이 연사 목놓아 외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동건이 엄정화에게 “가방 하나 갖다 줘요.

너무 지루하지 않은 걸로” 라고 요구했을 때, 나는 느꼈다. 그 지루하지 않은 가방은 바로 엄정화 자신이라는 것을. 그녀가 다음 번에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시대 욕망을 재현할지. 엄정화, 그 붉은 장미의 속살을 다시 한번 엿보고 싶다.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