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가 국시인 터키에서 대통령직은 ‘세속주의의 수호자’라 불린다. 그러나 제11대 터키 대통령으로 28일 선출된 압둘라 굴(56) 외무장관은 터키에서 최초로 탄생한 이슬람 성향 정당 소속의 대통령이다.
이슬람 성향의 친서방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창당 멤버이기도 한 굴 장관은 4월 집권 AKP의 단독 후보로 지명돼 대통령직에 도전했으나 세속주의 야당의 투표 거부와 세속주의 지지 세력의 대규모 반대시위에 부딪쳐 좌절됐다.
그러나 레젭 타입 에르도안 총리가 이들의 반발을 수용해 실시한 조기총선에서도 AKP는 압승을 거뒀고, 굴 장관은 다시 한번 대선에 출마, 의회 투표에서 과반수를 넘는 지지를 얻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터키 중부의 공업도시 카르세이주의 독실한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난 굴 신임 대통령은 이스탄불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80년대 이슬람 개발은행에서 근무했다.
91년 이슬람 정당인 복지당의 공천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2001년 에르도안 현 총리와 다른 온건파 이슬람 성향 정치인들과 함께 현재의 AKP를 창당했다. 2002년 총선 승리로 총리가 됐으나 에르도안에게 총리의 자리를 양보하고 부총리 겸 외교장관 자리를 맡아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해 왔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이면서도 굴 대통령은 친 서방 정책을 추진해 왔다.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외무장관으로 활동하면서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과 이를 위한 개혁을 적극 추진해왔다.
30년에 걸친 터키 이슬람운동 사상 처음으로 당수인 네지메틴 에르바칸 전 총리의 이슬람중심 정책과 정교유착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세속주의 수호를 표방하며 쿠데타를 일삼아온 군부보다 민주적 투표를 통해 집권한 친 서방 온건 이슬람 세력인 AKP의 득세를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의 개혁적 태도와 “세속주의 원칙을 수호하겠다”는 공약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 지지 세력인 터키 군부와 법조계, 야권에서는 굴 장관의 대통령 당선이 터키의 정교분리 원칙을 훼손하리라는 우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굴 장관의 부인 하이루니사와가가 이슬람 전통 의상인 히잡 착용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관청과 학교 등의 공공장소에서 히잡의 착용이 금지돼 있는 터키에서 ‘히잡을 쓴 퍼스트레이디’는 세속주의 붕괴를 상징한다는 우려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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