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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가치를 평가하지 못하는 사회

입력
2007.08.2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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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융시장을 혼란에 몰아넣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이 진정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주식시장도 쇼크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다.

돌아보면 이번 사태는 각국의 규제 완화와 첨단 금융공학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비약적으로 발전한 금융자본주의의 한계와 취약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금융 거래의 위험(리스크)을 분산하기 위해 고안된 첨단 파생상품이 너무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어느 날 시장을 위협하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 가치평가 부재가 부른 금융위기

시장경제는 합리적인 가격 결정을 전제로 한다. 가격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가치에 대한 평가다. 따라서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는 환경에서만 시장경제는 제대로 돌아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런 가치평가 기능의 마비로 빚어진 일이다. 너무 복잡한 채권 유동화 과정이 평가를 어렵게 한 탓도 있고, 장기 금융호황의 낙관적 분위기에 취한 시장 참가자들이 가치 평가를 소홀히 한 도덕적 해이도 작용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학력위조 파문도 흔히들 말하는 학벌만능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가치에 대한 평가 기능의 부재가 더 본질에 가깝다.

학벌이 전부라고 믿지는 않지만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학벌에만 매달린다는 얘기다. 가치 평가 능력을 상실한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 교육현실을 옥죄는 '3불 정책'은 고교의 내신 평가에 대한 불신, 대학의 자율적 학생 평가 및 선발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부와 공기업, 산하기관의 수많은 자리들이 공개 선발과정을 거치지만 후보자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뤄진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 공사 발주는 참가업체의 시공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평가 결과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입찰금액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공정한 경쟁에 따른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는 장벽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혈연, 지연, 학연 같은 정실주의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 사건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신씨가 가짜 박사학위 덕분에 교수에 임용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정실에 의한 힘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당시 총장이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교수임용을 밀어붙인 사실이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사건에 연루된 대목이 그렇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인선과정에도 외압이 작용했다는 정황이 무수히 많다.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신씨 사건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사실이 없다. 이미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는데도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대목은 더욱 수상하다. 아무리 당사자 신씨가 없더라도 제대로 수사만 이뤄진다면 의혹의 실체는 충분히 규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100억원이 넘는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 신뢰사회 위해 '지독한 검증'을

신뢰는 추상적인 사회적 규범이지만 동시에 경제적 자산이기도 하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인적 자본, 물적 자본에 못지않게 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이 더 중요시되는 추세다.

우리 사회의 내로라는 교수, 예술가, 연예인이 대거 연루된 이번 학력위조 파문은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을 더욱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 사회의 도덕적 검증의 잣대가 매서워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검증이 가능한 신뢰사회로 가는 생산적 진통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학력위조 파문은 이쯤에서 덮을 것이 아니라 더욱 '지독하게' 파헤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의 책임 또한 철저히 추궁해서 부도덕한 과거와 단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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