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루이지에(張瑞杰) 대사는 오후 회의에서 강경한 어조로 우리측에 두 가지 불만을 표출했다. “한국측 주장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의 관계는 깊고 특수하며 대만이 한국에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
따라서 지금 갑자기 외교관계를 중단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대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는 것이 곤란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주장하면서 아예 ‘선(先) 대만문제 해결’을 못 박았다.
이어 한국측이 중한관계 정상화와는 관련이 없는 사항을 제기하는 한편 이것을 중한관계의 조건으로 만들어 놓고, 대만문제에 대한 중국측 입장을 (양국 관계발전의) 조건으로 제기했다고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더 나아가 “오전에 권 대사가 말한 대로 한국의 입장을 중국이 다 접수하면 한국이 중국이 제기한 사항을 다 받겠다는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되받았다.
그러면서도 중국측은 대만문제 이외에는 우리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예상외로 유연한 답변을 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 문제에 대해서 장 대사도 화답을 했다. 한반도의 남북 국민이 통일을 갈망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이러한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고 밝힌 뒤 이번 회담 역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견해였다.
북한 일변도 지양과 남북한 대등한 관계 발전 문제에 대해 장 대사는 중국과 대한민국, 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간 관계에 있어서 공히 평화공존 5원칙을 적용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지금 중한관계 정상화에 관해 논의 중에 있으며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중국과 한국의 실질 관계가 많이 변했고, 날이 갈수록 깊고 높은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바로 중국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중국은 북한 일변도의 정책을 펴지 않고 있으니 한국은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중조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당시 역사적 정황 아래서 체결한 조약이며 최근 한중관계의 발전 자체는 이 조약이 장애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중국 측은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 어느 일방의 핵무기 보유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마침내 우리 측이 고대하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해 중국 측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중국은 6ㆍ25조선전쟁이 일어난 다음 국경지대가 위협받았을 때 부득이 의용군을 파견한 것이다. 중국도 큰 피해를 입었다. 두 나라 관계 정상화를 토론하는 자리에 과거의 역사문제를 제기해 놓으면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은 자신의 생각이 있고 중국도 중국의 입장이 있어 논쟁을 하면 오래 지속될 것이며 제 생각으로는 이 문제는 한중관계 정상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사과나 유감표명도 없었고 크게 미흡한 수준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수교에 지장을 주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치 않고 논쟁을 회피하면서 수세적으로 넘기려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말 머리를 다시 대만문제로 돌리면서 더욱 강경한 자세로 돌변했다. 대만문제에 대한 한국측의 오전회의 발언은 한국의 대통령과 외무장관의 말과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반격해왔다. 양국의 희망은 다 같이 관계 정상화의 실현인데 서로의 입장 차이가 심하고 좀 먼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담조건이 성숙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장 대사는 그러더니 “만약 한국측에서 시간을 갖고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다면 중국측은 기다리겠노라”며 대만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회담을 연기할 수도 있다고 위협성 발언으로 압박해왔다.
나는 이 시점에서 두 갈래로 뚜렷이 갈라진 중국의 입장을 감지했다. 즉 한국이 제기한 6가지 사항 중 대만문제를 제외한 5가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온건하게 수용하는 입장으로 답변하는 한편, 대만문제에 대해서는 더 강경하게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는 강온양면작전을 펴면서 수교교섭을 타결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의 논쟁을 접고 대만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설명(clarification)할 시점임을 느꼈다.
나는 먼저 중국측의 입장 설명이 양국관계 정상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전쟁 문제가 양국관계의 정상화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과거의 불행한 문제가 앞으로 한중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각자의 입장을 해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부연 설명, 이 문제에 대해 한국측도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암시했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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