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4년 무렵 모바일 게임기 시장에 일대 격전이 예고됐다. 소니와 닌텐도가 비슷한 시기에 신제품을 내놓으며 맞불을 놓은 것. 소니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고가품 '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PSP)을, 닌텐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저가품 '닌텐도DS(듀얼스크린)'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소니 PSP의 우세를 점쳤지만, 결과는 닌텐도DS의 압승이었다. 6월말 현재 닌텐도DS의 판매량은 4,727만대로 소니PSP(2,753만대)를 압도했다. '싸고 쉬운 제품'의 승리였다.
#2. 광풍처럼 몰아치던 미니홈피의 열풍이 잦아드는 대신 '마이크로블로그'라는 신종 서비스가 급성장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지인(일촌)들과 소식을 나눠야 하는 미니홈피와 달리, 마이크로블로그는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된 즉흥적 감상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초미니 블로그. 미국의 트위터, 일본의 모고모고, 우리나라의 미투데이나 플레이톡 등이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부지런한 소비'가 주춤하고, '게으른 소비'가 뜨고 있다. 매니아 중심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제품과 서비스에 거리감을 느껴 온 소비자들이 쉽고 단순함을 찾아 나서며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슬로 어답터(Slow Adopter).'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고 남보다 먼저 쓰면서 매니아적 감성을 가진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IT업계가 관심을 기울인 선도 소비자는 '얼리 어답터'들. 신기술을 잘 받아들이고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으로 기업의 제품기획에도 참여하는 적극적 소비자다. 비록 소수이지만, 일반 대중소비자를 선도하는 고객층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점차 소비자들은 근사하고 새로운 것에 몰입하고 탐구할 시간이 부족해져 가고 있다. 언제나 바쁜 일상에 묶여 있는 탓이다. LG경제연구원 손민선 선임연구위원은 "지나치게 복잡한 기능, 머리 아픈 짜임새, 오랜 기간의 연습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일반 소비자들은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얼리 어답터'형 제품이었던 PSP가 성공하지 못하고, 애플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아이폰'이 기대이하의 판매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로 분석된다.
여기엔 '얼리 어답터'적인 기질이 다분한 10대후반~20대초반의 소비자에 비해 '슬로우 어답터'에 가까운 20대후반~40대초반 소비자의 구매력이 더 높은 데도 원인이 있다.
일본 1위 이동통신업체인 NTT도코모는 최근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의 핵심고객이 10대 후반 여성에서 20대 후반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발표했다.
'얼리 어답터'에 비해 소비확산은 완만하지만, 안정적 소득 등으로 인해 훨씬 더 지속력이 있는 점도 '슬로우 어답터'가 새로운 소비 주체로 등장한 원동력이다.
손 연구위원은 "갈수록 바쁘고 귀찮음이 많아지는 소비자들은 성능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며 "고성능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보다는 쉽고, 간단하고,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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