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김모(62)씨는 경기 연천군이 최근 작성한 토지적성평가 공람을 본 뒤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6년 전 퇴직금 7,000만원을 들여 산 관리지역(옛 준농림지) 땅이 개발이 불가능한 보전관리지역으로 분류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준농림지를 세분화한다는 소식에 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박은커녕 본전도 뽑지 못할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2. 대구에서 중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서모(40)씨는 3년 전 친척의 권유로 경기 고양시 관리지역 내 땅을 샀다가 대박을 터트렸다. 고양시가 지난해 12월 최종 발표한 토지적성평가에서 개발이 가능한 계획관리지역으로 확정 고시된 이후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서씨는 "위험 부담이 큰 준농림지여서 구입 당시 조마조마 했는데, 계획관리지역으로 분류돼 큰 돈을 벌게 됐다"고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옛 준농림지인 관리지역을 세분화하는 토지적성평가 결과가 가시화하면서 전국 토지시장에 일대 변혁이 일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법)에 따라 전국의 관리지역이 개발 가능지역과 보존지역으로 나눠짐에 따라 과거 관리지역 내에 '묻어두기식 투자'로 돈을 벌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박을 노리고 매입한 땅이 토지적성평가 결과 개발 불가능한 토지로 분류될 경우 자칫 '쪽박'을 찰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토지적성평가는 도시관리계획을 입안하기 위해 실시하는 기초조사로 기존 관리지역 내 토지를 보전관리지역, 생산관리지역, 계획관리지역으로 세분화하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는 국토법에 따라 올해 말까지 분류작업을 마쳐야 한다.
계획관리지역은 아파트와 공장 등을 지을 수 있는 곳으로, 향후 도시개발 1순위 땅이다. 생산관리지역은 농ㆍ임업 활동을 위한 토지이고, 보전관리지역은 자연ㆍ생태계 보전지역으로 개발이 불가능하다.
계획관리지역에 포함되면 향후 도시 개발에 따른 수혜를 입어 땅값이 급등하는 반면, 생산관리지역이나 보전관리지역은 상당 기간 개발을 할 수 없어 땅값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토지적성평가가 관리지역 내 땅값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다 보니 세분화 내용을 둘러싼 지자체와 주민들간 힘겨루기도 치열하다. 지금까지 토지적성평가를 마치고 결과를 확정ㆍ고시한 지자체는 전체 146곳 중 대전, 울산, 대구와 경기 고양, 포천, 양주, 파주 등 7곳에 불과하다.
42개 지자체는 입안 공고를 낸 상태고, 나머지 97개는 입안 공고를 준비 중이다. 대다수 지자체가 이미 토지적성평가를 끝냈지만,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확정ㆍ고시를 미루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교통부는 27일 올해 말까지 관리지역 세분화 작업을 마치지 않으면 관리지역 전체에 대해 보전관리지역과 동일한 건축규제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의 국토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세분화 작업을 서두르라는 최후통첩인 셈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토지적성평가가 연내 마무리되면 토지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준호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땅을 10년간 묻어놓고 있으면 10배로 보답한다는 토지시장의 불문율은 이제 사라졌다"며 "토지적성평가에 따라 땅값은 철저하게 양극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연히 토지 투자도 신중해야 한다. 박 교수는 "관리지역 내 토지를 구입하려면 어림짐작이 아닌 전문가 조언에 따라 계획관리지역에 편입될 가능성이 큰 곳을 선점하거나 자신이 없다면 토지적성평가 결과를 기다린 후 매입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손재언 기자 chin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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