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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34> 진성티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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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34> 진성티이씨

입력
2007.08.2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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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터필러, 일본의 고마츠와 히타치 등 세계 3대 중장비 업체들은 시시각각으로 한국 평택공장의 상황을 점검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운다. 중장비의 핵심 부품인 씰과 롤러를 제공하는 진성티이씨가 하루라도 멈추면 공장자체가 가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진성티이씨는 매출 1,000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이지만 전세계 중장비업체들을 쥐락펴락하는 기술력을 갖춘 중장비 부품 업계의 ‘슈퍼스타’다. ‘경쟁사 간에는 같은 회사의 부품을 쓰지 않는다’는 중장비업체의 불문율을 진성티이씨가 깨뜨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오기 하나로 시작한 회사

진성티이씨의 시작은 창업주 윤우석(64) 회장의 오기에서 출발했다. 1960년대 후반 서울대 공대 출신의 공병부대 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윤 회장은 화천댐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면서 굴착기와 불도저의 잦은 고장에 속을 태웠다. 원인은 롤러와 씰 때문이었다

윤 회장은 이때부터 ‘제대로 된 부품을 내 손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군을 제대한 후 5년간 상업은행을 다니며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75년 서울 문래동에 '신생산업사'를 차려 직접 쇳물을 끓여 제품을 만든 것. 당시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롤러와 씰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제품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밤을 지새웠다.

■ 주물공장에서 중장비 부품 전문회사로

마영진 사장은 83년 당시 진성티이씨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당시 대우중공업의 부품 개발담당자였던 마 사장은 씰과 롤러 공급처를 찾기 위해 진성티이씨를 찾았다.

하지만 당시 오산공장은 잡다한 제품을 만드는 대장간 수준을 넘지 못했고, 마 사장은 당시 실사기록에 ‘생산 능력 없음’이라고 썼을 정도였다.

하지만 윤 회장의 일에 대한 집념과 실과 롤러 전문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 하나를 믿고 일을 맡겼다. 마 사장도 부품 국산화에 대한 회사의 요구가 워낙 거세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83년 말 마 사장은 직접 진성티이씨 기술자들과 일본 히타치사로 연수를 떠나 롤러 라인을 보고 돌아 온 후 생산을 개시했다. 진성티이씨가 대우중공업의 납품업체로 공식적으로 선정돼 중장비 부품전문 기업으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 세계3대 중장비업체 납품 꿈 이루다.

대우중공업에서 인연을 맺은 마 사장은 윤 회장의 간청으로 94년 진성티이씨에 입사했다. 주어진 임무는 해외시장 개척. 윤 회장의 눈은 미국과 일본을 향하고 있었다.

마 사장은 “윤 회장은 ‘미국의 케터필터, 고마츠, 히타치 등 세계 3대 중장비업체에 씰과 롤러를 납품하는 것이 꿈이다’라는 말을 항상 해 왔다”고 회고했다.

윤 회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땅을 밟았지만 아무도 진성티이씨 부품을 써주지 않았다. 마 사장은 한국인 중간상과 거래를 통해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한국인 중간상은 1년이 가도록 도대체 지성티이씨의 씰과 롤러가 얼마에 팔리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 사장은 중간상 대신 부품 구입처인 딜러를 찾아가 가격 내역을 요구했다.

“영업비밀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버텼지만 마 사장의 간곡한 부탁에 관련 서류를 슬쩍 내밀었다.

마 사장은 깜짝 놀랐다. 회사는 원가수준에 제공하고 있는데 중간상은 엄청난 수익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계약을 해지하고 미국 중장비 부품업계 최대 딜러 중 하나인 ‘트랙’을 찾아 직접 거래를 요구했다.

담판은 오래가지 않았다. 트랙은 이미 한국인 중간상을 통해 진성티이씨의 씰과 롤러를 쓰고 있어 기술력을 알고 있는데다, 중간상보다 싼 값에 공급하겠다는 제안에 ‘OK사인’을 했다.

이후 트랙과 해비캡이라는 양대 딜러와 거래하면서 미국시장은 열렸고, 캐터필러도 진성티이씨의 고객이 됐다. 이후 진성티이씨는 캐터필러에 주문자상표제작방식(OEM)으로 씰과 롤러를 제공하며 세계적인 중장비 부품회사로 우뚝 서게 됐다.

캐터필러의 최대 라이벌인 일본의 히타치와 고마츠도 경쟁사의 부품회사는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버리고 진성티이씨에 씰과 롤러 공급을 맡겼다.

독보적인 기술, 경쟁은 없고 성장은 계속된다.

진성티이씨는 롤러와 씰의 품질을 위해 측정설비 검사시스템을 통해 부품 전량에 대해 세차례 정밀검사를 실시한다. 또 씰 제조 관련 특허기술을 다량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독보적이다. 매출 1,000억원 중 수출액이 648억원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96년에 ISO 9001 품질인증, 2002년에 ISO 14001 인증을 각각 획득하고, 2005년에는 과학기술부 신기술인정업체(KT마크)로 선정되는 등 품질을 인정 받고 있다.

마 사장은 “최근 동남아시아나 중국 업체들이 解?공세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기술력을 갖춘 진성티이씨의 아성은 당분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세계적으로 롤러는 500종, 씰은 200여 종의 모델이 있을 만큼 굴착기 부품은 다품종으로 생산되는데 이 모든 부품의 품질을 유지하며 40일 만에 설계ㆍ제작ㆍ납품할 수 있는 곳은 진성티이씨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마 사장은 “중장비의 핵심부품인 씰과 롤러에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만큼 당분간 경쟁 없는 성장을 이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롤러와 씰

진성티이씨를 세계적 중장비 부품 회사로 성장시킨 원동력인 씰의 모형.

씰은 중장비의 하부동체의 롤러에 부착돼 기름 유출을 막는 핵심부품이다. 롤러는 탱크 바퀴처럼 생긴 무한궤도 형태의 하부 주행체에 들어가는 것으로, 수십톤에 달하는 중장비 무게를 지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씰은 롤러 내부의 오일 유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두 부품의 품질에 따라 굴착기 성능이 판가름난다. 진성티이씨가 세계적인 중장비업체들의 품질을 결정한다는 말이 나온 이유기도 하다.

평택=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 마영진 사장의 2010 비전

“진성티이씨의 부품을 글로벌 세계 표준으로 만들겠다.”

마영진(50) 진성티이씨 사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비록 작은 중소기업이지만 세계 일류 중장비 업체들을 고객으로 갖고 있을 만큼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만하더라도 누구도 진성티이씨가 세계 중장비 부품업계를 석권하고 있던 이탈리아 업체들을 누르고, 콧대 높은 일본 업체들이 경쟁을 포기할 정도의 ‘막강한’업체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 사장은 1994년 입사해 13년 동안 세계 무대를 누비며 진성티이씨의 씰과 롤러를 팔아 대표적인 수출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대우중공업에 100% 의존하는 데서 오는 위험에서 벗어나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무대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 개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목표는 동남아 시장이었다. 마 사장과 창업주인 윤우석 회장은 94년부터 싱가포르와 태국, 말레이시아의 뒷골목을 누비며 씰을 팔기에 나섰다.

마 사장은 “우리로 말하면 옛날 청계천 같은 곳에서 영업을 하던 동남아 상인들이 ‘한국이 그런 것도 만들 줄 아냐’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고 당시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1년 만에 동남아 상인들은 값싸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진성티이씨의 씰을 구하느라 하루가 멀다하고 주문을 냈다.

95년 세계 최대 중장비 박람회인 바우머 전시회에서 유럽 최고 중장비 업체인 인터트렉터 부스를 찾아가 씰을 사달라고 요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 사장은 “자기들도 물건 팔려고 부스를 차려놓고 기다리는데 부품을 사달라고 갔으니 얼마나 황당해 하던지 연락처 하나 받을 때까지 꼬박 4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초청을 받고 독일까지 가서도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마 사장은 이를 극복하고 결국 수주에 성공했다. “97년 당시 외환위기 사태가 터져 주문이 하나도 없어 인터트렉터에 사정을 얘기하자 “걱정 말라”고 우리를 안심 시키더군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에 도착해보니 벌써 선주문이 들어와 있었고, 원화가치까지 급격히 떨어져 표정관리를 해야 할 정도”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후 미국의 캐터필러, 일본의 고마츠와 히타치 등 세계 3대 중장비 회사도 진성티이씨의 실과 롤러를 찾아 태평양을 건너왔다.

마 사장은 “기술력이 없었으면 유럽과 미국, 일본 시장은 넘지 못할 벽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롤러를 자체 생산하던 일본의 히타치사가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생산공장을 폐쇄했을 정도로 진성티이씨는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중국과 동남아 등 후발업체들과의 경쟁도 “당분간은 없다”고 단언했다. 마 사장은 “씰만 해도 종류가 수백개에 달하고, 이를 한달 내 한꺼번에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세계에서 진성티이씨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진성티이시의 성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고 전했다. 씰과 롤러뿐 아니라 이를 포함한 중장비 하부 동체인 언더캐리어를 만들어 수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마사장은 ‘뉴 스타트 2010’을 캐치플레이로 내걸고 뛰고 있다. 2010년까지 매출 2,000억원과 순이익 1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마 사장은 “씰과 롤러 등 언더캐리어 부품에서 ‘진성이 곧 표준’이라고 할 때까지 매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평택=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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