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이 중대급 마일즈(MILESㆍ다중 통합레이저 교전 훈련장비) 사업을 중단한 과정을 들여다 보면 물음표 투성이다. 주무 부서인 육군 비무기체계사업단 측은 8일 중대급 마일즈 개발 업체 2곳에 대한 개발승인 취소를 발표하면서 "2005년 업체에 제시한 군 요구도(ROC)를 바꿨느냐"는 질문에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보가 27일 입수한 사업단의 '개발시험평가 향후 추진 계획' 문서에 따르면 사업단은 4월 ROC를 바꾼다고 업체에 통보했다. 'ROC가 정의하지 않은 요구 기능 및 제원은 시험평가 계획서, 국방 규격서 등을 통해 구체화 한다'는 ROC 규정을 근거로 "모호한 부분을 구체화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구체화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다. 육군 교육사령부가 만든 최초 ROC에는 '훈련장비의 통신코드는 PMT90-S002A, MCC97 등을 적용한다'고 돼 있었으나 사업단은 나중에 'PMT'코드는 뺀 채 'MCC97 코드'만 적용했다. 또 무선통신 방식도 '기능이 강화돼 신뢰도가 향상된 국제표준 방식을 적용한다'고 했다가 국제표준 방식을 제외시켰다.
전문가들은 군이 ROC의 기술 수준을 오히려 떨어뜨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군수업계 관계자는 "이미 사용 중인 대대급, 소대급 마일즈 장비와 호환하려면 다양한 통신코드를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호환 능력을 낮췄다"며 "무선통신 방식도 기존 것보다 업그레이드 된 국제표준 방식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지만 뺐다"고 말했다.
이상한 것은 육군이 이렇게 바꾼 ROC를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에 제시했고, 기품원은 이를 잣대로 업체의 자체 시험성적서를 심사해 'B사는 20개 항목 미충족, A사는 8개 항목 미충족'이라고 결론을 내린 점이다. 게다가 육군은 시제품에 대한 시험평가 없이 시험성적서만 심사했다.
기품원의 기준 적용도 의문이다. 기품원은 B사가 '유효사거리 내에서 적중률이 90%'라고 밝힌 항목에 대해 '기준 미달'판정을 하면서 '발사기의 오발사율은 1% 이하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ROC 기준을 근거로 삼았다. 100발을 쏠 때 몇 발이 발사되지 않는 지를 묻는 오발사율을 엉뚱하게 적중률을 재는데 적용한 것이다.
육군은 또 ROC를 정량화ㆍ구체화 하거나 수정할 때 관련 육군 기관과 협의하도록 한 전력발전업무규정도 어겼다. 교육사 관계자는 "육군본부 등 다른 기관에서 ROC 변경을 요청하거나 의미 해석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해할 수 없는 육군의 이 같은 조치를 두고 군 안팎에서는 육군이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A사에 편의를 봐주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육군은 ROC 변경을 시도하고 개발 협약서 체결을 지연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받다다 올해 초 국방부의 감사를 받았는데, 감사팀은 당시 사업단장 최모 준장과 사업관리과장 장모 대령에게 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경고 조치 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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