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소수정당으로 몰락하는 참패를 당한 이후 정권 사수와 쟁탈을 위한 여야 공방이 치열하다.
내각 지지율의 급전직하 속에서 ‘설마 설마’하며 선거를 치른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에게 이번 참패는 통한의 일격을 가했다. 중의원의 절대 안정 의석을 바탕으로 장기집권의 야심을 불태워 온 그는 집권 1년도 안돼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게 됐다.
■ 국민을 무시하면 망한다
그러나 참패는 아베 총리 스스로가 자청한 것이다. 자민당이 24일 정리한 선거결과 분석보고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득격차 확대, 연금문제 등으로 국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그는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와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등 ‘커다란’정치에만 몰두했다.
정치자금 문제가 발각된 각료들에게 국민들의 분노가 쏟아지는 데도 아베 총리는 끝까지 그들을 감싸주는 동지애를 과시했다. 끼리끼리 내각, 논공행상 내각이라는 혹평을 들었던 정권 내부로부터는 어이없는 실언과 망언이 속출했다. 자민당은 수의 우위를 앞세워 야당의 반대를 무자비하게 밀어붙이는 등 강수를 고집했다.
이 행태의 한가운데에는 “나만이 옳다”는 아베 총리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자만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수세력의 총아로 기대를 모았던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방향이 옳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들이 자기를 따라줄 것이라는 과신에 빠져있었다. 참패가 확실하자 자민당 지도부가 총리 교체를 논의한 순간에서조차 “정책 방향이 옳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틴 것도 이 점을 시사해 준다.
자민당 보고서는 아베 총리에 대해 “국민들이 지도력을 의심하고 있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자민당이 얻은 선거 참패의 교훈은 “국민을 무시하는 권력은 망한다”는 단순한 진리다. 설사 국민들이 어리석어 지도자의 깊은 뜻을 몰라준다 해도 그런 국민을 설득하고 화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이웃 나라의 선거를 지켜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또 하나 있다. “유권자는 표로 말한다”는 상식이다. 선거 한 달 전부터 추락한 내각 지지율이 선거 결과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아베 정권은 추락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그럴듯한 대책들을 급하게 내놓았지만 국민들은 얼렁뚱땅 내놓은 정책에 현혹되지 않았다. 냉정하게 따져가며 투표했다. 정치가에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엄정한 유권자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 투표는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국민들의 소중한 수단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 유권자는 표로 말한다
아베 총리는 선거 후 많이 변했다. 말투도 그렇고, 태도도 달라졌다.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한이 담긴 평화헌법 개정 등 그가 정력적으로 추진해 온 보수ㆍ강경 노선의 정책들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은 국민과 동떨어진 신념을 가진 젊은 지도자의 거만한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시대착오적인 섬나라식 지도자가 많은 일본이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에서는 선진국임을 자부할 만한 대목이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사회에서 이 같은 정치권력과 국민간의 선거 커뮤니케이션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또 그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도 단언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를 키우는 것은 ‘8할이 국민’이라는 역사적 교훈이다.
도쿄 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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