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출(46)씨는 이제 좀 낯이 서는 기분이다. 1990년대 손에 넣은 뒤로는 떼 놓은 적 없던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을 막 옮긴 것이다. 국내 초역. 폴란드 마르크시스트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역저다. “마르크시즘이 이론과 현실 사이를 오가던 당시, 사회주의 몰락 소식을 접하고는 미뤄뒀던 번역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마르크스주의의>
그러나 2,0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정말 출판될까가 아니라, 지루한 번역 작업을 감내해낼 지가 현안이었다. “일이 끝난 밤 10시께부터, 이 닦듯 매일 최소한 1~2쪽은 옮겼습니다.” 그 결과, 도서출판 유로서적에서 전 3권의 두툼한 세트로 선보이게 됐다.
“2권까지 옮겨 놓고 나서, 저작권 문제를 놓고 함께 논의했던 출판사예요. 갈수록 수요가 높아져 가고 있는 고전이라는 확신도 공유했죠.” 스탈린 비판으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정통 마르크시스트의 따가운 지적은 이 시대 한국에도 중요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
신자유주의적 세계, 아니 한국에서부터 영향력이 체감돼 가고 있는 마르크시즘이 걸어 온 방대한 여정을 철학적ㆍ역사적ㆍ현실정치적으로 곱씹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자본주의의 지구화, 자본주의적 물질주의, 인간 소외, 비정규직 문제, 현실 사회주의 등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죠.” 특히 신비주의적으로 비칠 수도 있을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에 대해 한 장이나 할애하고 있음은 이 책을 더욱 미덥게 하는 일례이기도 하다.
리얼리즘 문예 이론가 루카치를 전공한 그는 “마르크시즘을 재정립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론적 담론과 정면 대결하는 데 긴요한 책을 쓸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자신은 좌파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인간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론적 실천에 경도된 구조주의적 마르크시즘은 이를테면 단성 생식이죠.” 1980년대말, 알튀세류의 현란한 구조주의가 마르크시즘의 본령을 흐린다며 못마땅해 하던 그는 영국의 좌파 역사학자 E. P. 톰슨에게서 진정한 지성인을 보았다. 톰슨과 서신으로 쌓은 친교는 그의 주저 <이론의 빈곤> 번역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톰슨은 코와코프스키와 이론적 실천의 문제를 두고 공개 서한을 나누기도 했으니, 톰슨-코와코프스키-변씨 사이에는 모종의 ‘좌파적 연대감’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영남대 등지에서 독문학, 미학, 문예 이론, 민중 문화 등을 강의중이다. 이론의>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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