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교민 K모씨는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탈출하기 시작됐다”고 귀띔했다. 칭다오에서는 액세서리 관련 제품을 만드는 1,500개의 한국 기업들이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의 몇몇 기업인이 최근 베트남으로 가 공장부지와 사업환경을 조사하고 돌아왔다. 중국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기업의 대표들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선 것이다.
조민호 주중 한국공예품 협회 사무차장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대표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베트남 인도 등지에서 부지를 물색하느라 난리라고 전했다. 올해 이 업체들의 평균 임금은 월 610위안이지만 내년에는 710위안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는 근로자 사회보험 가입이 의무화돼 사실상 임금의 50% 정도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초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칭다오에서는 중국 정부의 가공무역 관세환급 축소로 앉아서 200만달러를 날린 D기업이 화제이다. 연 매출액이 5,000만 달러인 이 기업이 한순간에 200만달러를 손해봤으니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광둥(廣東)성 동관(東莞)의 경우 40여개에 이르던 봉제 완구 업체 중 35곳이 이미 중국땅을 떠났다.
지난해말 한국 기업인들의 야반도주 사건은 ‘중국 탈출’의 예고편이었다. 칭다오의 피혁 업체 업주 2명이 은행 빚과 임금을 견지 못해 야반도주를 했다. 이후 칭다오, 다롄(大連), 동관 등지에서는 한국 기업인들의 야반도주가 잇달아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못한다. “한국 기업인이 몰던 차를 팔면 조심하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한국 기업인이 차를 파는 것은 재산을 정리해 달아날 준비를 한다는 얘기다.
다롄경제기술개발구에 입주한 반도체 관련 중견 부품업체인 대련광전자유한공사 심동춘 총경리는 “종전에는 한국산 부품을 100% 썼지만 이제는 60%로 이하로 줄었다”며 “한국 경제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고가인 한국산 부품을 사용하면서 적자에 허덕였던 이 기업은 부품을 저렴한 중국산으로 대체하면서 가격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주중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부품이 한국의 대중 수출액의 상당액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부품 자립화는 곧 한국의 대중 흑자 감소를 의미할 뿐이다.
대기업들의 사정도 어렵다. 현대차의 중국법인인 베이징현대는 올해 상반기 판매대수가 전년 동기에 비해 15.7% 감소했다. 현대는 한국과 중국에서 신형모델을 동시에 출시하는 전략으로 신화적인 성장을 했지만 최근 도요타 등 경쟁업체들이 현대의 전략을 따라 하면서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기업의 위기는 중국이 시장체제를 본격적으로 완비하는 와중에서 찾아왔다. 공해기업을 억제하고, 외국기업에 파격적으로 깎아주던 법인세를 올리고, 근로자의 임금과 복지혜택을 강화하면서 인건비만을 생각하고 중국에 투자한 기업들은 거친 신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중국이 부유해지면서 구매력을 갖춘 거대시장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은 한국기업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곽복선 베이징 KOTRA관장은 “위기상황이지만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다면 3~4년 후 우리 기업의 체질은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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