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은 대단히 융통적인 것 같다. 전화로 미리 늦는다고 알리기만 하면, 몇 분 심지어 한 시간 정도 늦어도 결코 화를 내는 법이 없다. 교통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여러 개의 약속을 해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성스럽고 방해 받지 않아야 할 행사, 졸업식이나 결혼식과 같은 때, 왔다갔다 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 사진을 찍거나 늦게 온 친구나 가족에게 손을 흔드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능숙하게 받아들이고 처리한다.
● 남을 의식하지 않는 한국인들
한국사람은 특히 휴대 전화 사용에 관대하다. 전화를 끄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진동으로 해 놓고 손으로 감싼 채 조용조용(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통화한다.
영화관 같은'조용한'분위기에서 느닷없이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거나 심할 경우 쫓겨나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한국사람은 굳이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는 듯 하다. 종종 택시기사가 대답 없이 운전만 하는 경우를 본다. 이런 택시기사의 행동에 기분이 안 좋은 적이 있었지만 나중에야 그 같은 침묵은 내가 가려는 방향을 이해했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승객이 가려고 하는 곳을 잘 몰라도, 목적지까지 상세한 내용을 말하지 않아도, 지도가 없어도(최근에는 네비게이터 장착으로 상황이 바뀌었지만) 느긋하게 운전한다. "다음 번에서 왼쪽으로요"라고 말할 때까지 말 없이 운전만 할 뿐 정확하게 알려 주지 않아도 당황하는 법이 없다.
현재 7년 째 한국에 살고 있는데 처음 1~2년 동안은 집중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 하지만 한국어 실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아직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라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는 한국사람의 말과 행동을 나만의 문화적 맥락 속에 맞춰 내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애썼다.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좌절과 혼란, 불만 뿐이었다.
왜 내 말에 대답을 안 할까?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화기는 왜 끄지 않을까? 불쑥 끼어드는 이유는 뭘까?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등등
요약해서 말하면, 나는 까다로운 엄마였다. 내 삶의 경험을 좌절과 혼란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된 지금, 삶은 훨씬 편안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취업 관광 또는 유학으로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들의 수가 증가하는 현상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약 25만 명의 한국인들이 호주를 찾았다. 이들 중 아무도 호주에서 실망 또는 불편했던 점이 없다고 한다면 나로선 크게 놀랄 일이다.
● 서로 다른 관점과 행동 이해를
그래서 해외 취업이나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언어에만 집중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집에는 주춧돌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어와 문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하기 연습과 다양한 표현(문법적으로 틀리는 경우가 있더라도)을 듣는 것 역시 중요한 초석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문화에 대한 이해이다. 호주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경험을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고, 서로 다른 관점과 행동양식을 기꺼이 이해하려는 태도는 해외 경험과 그곳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즐겁고 가치 있게 해 줄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그러는 것처럼.
메리-제인 리디코트 주한 호주대사관 교육과학 참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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