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자신을 권좌에 오르게 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결별할 태세다. 자신의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해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한데다 부시 행정부에 기대지 않더라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정치적 계산에서다.
말리키 총리는 22일 국빈 자격으로 방문중인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친구를 찾을 수 있다”면서 “어느 누구도 이라크 정부에 정치 일정을 강요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말리키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전날 부시 대통령이 “말리키 총리의 지도력에 실망했다”면서 “이라크 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국민이 정부를 교체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뒤 나왔다.
부시 대통령이 외교적 수사를 생략한 채 직설적으로 말리키 총리를 비난한 것은 말리키 총리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케 한다.
말리키 총리는 지난해 5월 부시 대통령의 지원으로 취임했으나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말리키 총리가 취임 당시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 등 각 종파와 인종을 망라해 출범시킨 거국 내각은 최근 각료의 절반 가량이 사임하면서 ‘반쪽 정부’가 돼버렸다. 거국 내각에서 각기 상반된 목소리를 내는 정파들을 조율하는데 말리키 총리가 실패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말리키 총리는 시아파 민병대 해체, 석유 개발 법안 처리 등 미국이 바라는 사안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말리키 총리는 20~22일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시리아를 방문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부시 대통령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건드렸다. 미국은 시리아가 레바논 내전에 개입하는 등 각종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며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말리키 총리는 사담 후세인 집권 시절 시리아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미국 정부에 대해 불만이 쌓이기는 말리키 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말리키 총리는 거국 내각이 반쪽으로 전락한 것은 자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내각 자체가 태생적으로 워낙 상반된 새력이 모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시리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분쟁의 씨앗이 돼온 국경선을 확정 짓는 등 이라크 재건에 필요한 것을 얻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말리키 총리는 이 달 초에는 미국의 또 다른 숙적인 이란을 방문해 경제 지원 등의 약속을 받아냈다.
말리키 총리는 부시 행정부의 지원이 없더라도 정권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는 부시 행정부가 대안이 없어 자신을 총리 직에서 쫓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부시 대통령은 22일 “말리키 총리의 교체 여부는 이라크 국민들이 결정할 일”이라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으나 양측간의 갈등은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분석이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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